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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나치즘-포이케르트

저작시기 2005.10 | 등록일 2006.01.25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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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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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나치는 19세기 말엽에 유럽에서 유행하던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국가사회주의 및 반공산주의와 반민주주의 사상을 기초로 하여 발생하였다. 한 가지의 사상에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상들의 영향을 골고루 받은 것이다. 나치는 대중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사회주의적인 방식을 이용했다.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서 마르크스주의의 개념을 변질시켜 차용하였고, 계급투쟁의 힘을 민족 통합의 힘으로 이용함으로써 노동자 계급을 계급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닌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나치는 군중 심리를 이용하여 대중을 결집시키기 위한 정치 선전과 상징과 이미지를 제공해주는 예술, 언론을 적극 이용하였다. 예를 들어서 나치는 시각적인 효과를 중시하였는데
제복이나 휘장을 포함하여 만장기 같은 국가적 상징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대중 행사와 집회가 연출적이며 제의 형식을 띄고 있었다. 이러한 행사들을 통해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대규모 합창단의 합창과 연출된 행진으로 대중을 열광시킴으로써 집단적인 동의를 이끌어내고 그들의 감정을 조작한 것이다. 나치즘의 이러한 이미지 창조와 전파는 여러 예술의 형태와 대중 매체라는 도구에 의해서 이루어 진 것이다.
나치는 이런 방법 이외에도 폭력과 테러를 통해서 대중들의 불만과 비판을 잠재웠다. 게슈타포, 경찰조직, 나치스친위대 등 감시를 하는 조직 말고도 밀고라는 제도를 통해서 사람들은 서로 불신하게 함으로써 개인들을 원자화시키고, 이를 통해서 체제를 유지시켜나갔다. 사람들은 불만이 있거나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점들이 있어도 이를 자유롭게 발언할 수가 없었다.
예들 들면 유대인들에 대한 탄압, 특히 그것이 여성과 노약자들에게 행하여 졌을때 분명 거부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중들은 이런 나치의 횡포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나치는 인종적으로 다른 이민족뿐만 아니라 체제에 동의하지 않고 저항하거나 이념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사람들을 이방인이라고 칭하였으며, 이들에게 물리적 힘을 행사함으로써 자국민에게까지 일상에서의 공포를 심어주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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