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한국사]조선시대 화성성역의궤 연구

저작시기 1997.01 | 등록일 2006.01.24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23페이지 | 가격 4,000원

소개글

외대 사학과 학사졸업논문으로 제출한 논문입니다.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인 의궤들 중에서 건설관련 의궤 중 가장 대표적인 화성성역의궤에 대한 구성, 내용, 의의와 의궤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쓴 논문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장. 머리말
의궤란? .
2장. 영건(營建)관련 의궤와 『화성성역의궤』
3장.『화성성역의궤』의 편찬과정
1). 정리자의 사용
2).『화성성역의궤』의 편찬ㆍ간행
4장.『화성성역의궤』의 구성과 내용
1).『화성성역의궤』의 각 권별 구성과 내용
2).『화성성역의궤』로 살펴본 축성과정
3). 성역에 사용된 비용
4). 성역에 동원된 인력과 각종 자재 및 건설 기계
5). 화성에 처음으로 도입된 성곽 시설물들
5장. 맺음말 - 『화성성역의궤』가 가지는 의의 .
참고문헌

본문내용

의궤란 의식(儀式)과 궤범(軌範)이란 단어를 합친 말로, 의식의 모범이 되는 책을 의미하고, 조선시대 기록문화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의궤다. 의궤는 국왕의 혼인(婚姻)을 비롯 세자의 책봉(冊封), 왕실의 혼례(婚禮), 왕실의 장례(葬禮), 궁궐의 건축과 같이 국가나 왕실에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이를 기록하여 선왕 때의 사례를 참고하여 후대에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의궤는 왕실의 각종 행사를 치르기 위해서 설치되는 도감(都監)이라는 임시기구에서 제작되었는데, 도감은 행사의 명칭에 따라 각각 그 이름이 달랐다. 왕실혼례의 경우에는 가례도감(嘉禮都監), 국왕이나 왕세자의 책봉의식에는 책례도감(冊禮都監), 왕실의 장례에는 국장도감(國葬都監), 궁궐의 건축과 같은 일을 행할 때는 영건도감(營建都監)과 같은 이름을 붙였으며, 각자가 맡은 행사를 주관하였다. 도감은 정승급에서 임명된 총책임자인 도제조(都提調) 1인 휘하에 판서급에서 임명된 3~4명의 제조(提調), 실무관리자인 도청(都廳) 2~3명, 낭청(郎廳) 4~8명 및 감독관에 해당하는 당하관(堂下官)의 벼슬에서 임명된 감조관(監造官)등으로 구성되었고,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전 과정을 날짜순으로 정리한 자료를 먼저 만들고 나서, 이를 바탕으로 의궤를 제작하였다.
의궤는 조선 초부터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데, 태조와 정종의『상장의궤(喪葬儀軌)』, 태종의 비 원경왕후(元敬王后)의『국상의궤(國喪儀軌)』, 성종 때 장악원(掌樂院)에 있던 의궤의 악보들을 뽑아서 만든『악학궤범(樂學軌範)』이 만들어졌음을 언급하는 실록의 기록을 통해 조선이 건국된 직후부터 국가의 주요 행사를 거행할 때마다 의궤가 만들어 졌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존하는 의궤는 17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고, 그 이전에 만들어진 의궤는 임진왜란(壬辰倭亂)과 정유재란(丁酉再亂)을 거치면서 대부분 소실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의궤 중에 제작 연대가 1600년(선조 33년)까지 올라가는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懿仁王后山陵都監儀軌)』에서 보이는 불에 그을린 흔적이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 해준다.

참고 자료

1). 김만일 외 6인,『수정국역 - 화성성역의궤』, 경기문화재단, 2001.
2). 김문식, 신병주,『조선 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 돌베개, 2005.
3). 서울대학교 규장각,『규장각 명품도록』, 서울대학교 규장각, 2003.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