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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정약용-한국 실학의 집대성

저작시기 2005.11 | 등록일 2006.01.24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정약용이란 인물에 대한 고찰
각주가 충실합니다.

목차

1.서론
1.1. 자료
2. 본론
2.1, 다산의 생애
2.1.1. 수학기
2.1.2. 사환기
2.1.3. 유배기
2.1.4. 해배기
2.2. 다산의 사상
2.2.1. 경학
2.2.2. 예학
2.2.3. 경세론
2.2.4. 과학기술
3. 결론

본문내용

2.1 다산의 생애

다산은 1762년 태어나서 1836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애는 대체로 소년시절부터 27세까지 초년의 ‘수학기’, 28세에 벼슬에 처음 나가던 때부터 정조 임금이 세상을 떠나던 39세까지 중년의 ‘사환기’, 40세에 경상도 장기를 거쳐 그 해 말에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 가서 57세에 해배될 때까지 장년의 ‘유배기’, 58세 이후 고향 마재에서 지내다 75세로 돌아갈 때까지 만년의 ‘해배기’의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2.1.1. 수학기

다산이 태어나던 해 사도세자의 참극을 목도하던 다산의 부친 정재원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 마재로 내려왔는데, 그 때 마침 다신이 태어나 다신의 처음 이름을 귀농이라 지었다.
다산은 네 살 때 『천자문』을 시작으로 여섯 살 때 경전을 읽고, 일곱 살 때 처음 시를 지었다. 10세 이전 지은 작품을 모아 『삼미자집』이라 하였다.
열다섯 살에 풍산 홍씨 홍화보의 딸과 혼인하였다. 부친이 호조좌랑으로 다시 벼슬에 나아가자 다산은 서울에서 누님의 남편 이승훈, 큰형의 처남인 이벽과 어울렸고, 성호의 종손 이가환을 만나, 성호의 학풍을 학습하였다. 16세 때 서울에서 이들 성호학맥의 후학들을 따라 성호의 유고를 읽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학문에 뜻을 세웠다고 한다. “나의 큰 꿈은 성호를 따라 사숙하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 많았다.”(「사암선생연보」

22세 증광감시에 경의로 초시에 합격하고, 그해 여름 회시에 생원으로 합격하였다. 이에 창덕궁 선정전에서 사은할 때 정조 임금을 첫 대면하고, 성균관에 입학하여 수학한다. 다산이 성균관 태학생이던 시덜 청년 지식인들 중심으로 서학에 대한 관심이 불붙기 시작한다. 당시 성호학파의 청년 지식인들 사이에 서학의 수용과 천주교 신앙의 중심적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이벽 이벽, 1754~86, 다산의 큰형수의 동생, 가장 먼저서양과학과 더불어 천주교 교리에 깊이 빠져 들었던 인물이다.
과 이승훈 이승훈, 1756-1801, 1783년 북경의 북천주당에서 예수회의 그라몽 신부로부터 영세를 받았고, 1784년 봄에 돌아와 이벽과 함께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앙공동체를 조직하였다.
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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