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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행정론]대구를 빛낸 조상들의 사상과 대구정신

저작시기 2005.11 | 등록일 2006.01.23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자칫 잊고 살아가기 쉬운 우리고장 대구의 면면을 살펴보고, 또한 대구를 빛낸 조상들의 사상과 대구정신(국채보상운동을 중심으로)을 재조명해 봄으로써 대구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고취해 보고자 한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대구의 역사
⑴ 고대(古代)
⑵ 삼국시대(三國時代)
⑶ 고려시대(高麗時代)
⑷ 조선시대(朝鮮時代)
⑸ 근대(近代)
⑹ 현대(現代)
2. 대구정신, 국채보상운동
⑴ 국채보상운동의 등장배경
⑵ 국채보상운동의 전개
⑶ 국채보상운동의 탄압과 종말
3. 국채보상운동의 선구자 서상돈․김광제
⑴ 서상돈
⑵ 김광제(金光濟)
Ⅲ. 결 론

본문내용

1. 대구의 역사
⑴ 고대(古代)
우리 고장 대구는 금호강과 그 지류인 신천으로 둘러싸인 기름진 들판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살기 좋은 자연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많이 모여 살면서 고장의 독특한 문화를 꽃피웠다. 대구를 비롯한 인근지역에서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민무늬토기(無文土器)를 비롯하여 간돌검(磨製石劍), 붉은간토기(紅陶) 등이 출토되어, 대구지역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하였던 것은 이때부터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대구의 청동기 유물은 국보 137호인 비산동의 청동검을 비롯하여, 신천동과 만촌동, 서변동 등 대구지역 전역에서 발견되고 있으며, 타지역의 청동기 유물보다 우수하여 청동기 시대 대구사회의 수준이 다른 지방보다 앞서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또한 우리 고장에는 청동기시대 무덤인 고인돌이 해방 전까지는 대구역 부근, 달성공원 부근을 비롯 동남쪽으로는 봉산동, 대봉동에서부터 수성들에 이르기까지 줄지어 있었으나, 시가지의 확장으로 인해 지금은 대부분 없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고인돌은 당시 그 많은 고인돌을 만들 수 있었던 세력집단들의 정치 및 사회상과 생활상을 알려주고 있다.
⑵ 삼국시대(三國時代)
삼한시대의 대구는 변진 24국 가운데 한 나라로 발전해 왔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보고 있으며 삼국사기에 의하면 261년에 달벌성(達伐城)을 쌓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신라국에 속한 큰 읍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689년 신라의 도읍을 경주에서 달구벌로 옮기려 한 사실과 신라의 오악(五岳) 가운데 팔공산을 중악(中岳)으로 숭배했던 점등으로 보아도 그때 당시의 대구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 행정체계인 군현체제 아래서 대구는 위화군과 달구화현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757년에는 위화군이 수성군으로, 달구화현이 대구현으로 개명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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