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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김마리아에 대한 레포트

저작시기 2005.10 | 등록일 2006.01.23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450원 (10%↓) 500원

소개글

여성독립운동가 김마리아에 대해서 기독교적 입장에서 접근한 과제입니다.
[기독교와 현대사회]발표 레포트입니다.
김마리아의 활동과 생애, 그리고 그분이 남기고 간 유산 등에 대해 작성하였습니다.
결론에서는 인터넷과 다른학생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의견을 독창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적정 분량과 창의적인 내용으로 A+받은 과제입니다.

목차

1. 김마리아선생은 누구인가

2. 성장

3. 애국 활동

4. 이 후의 활동

5. 선생이 이 땅에 남기고 간 유산
(1) 기독교 신앙인의 정신
(2) 자주 ․ 독립 정신

6. 발표를 마치며..

본문내용

1. 김마리아선생은 누구인가
김마리아(1892~1944)는 일제치하에서 조선의 독립 운동가이자 여성 계몽운동가로 크게 이름을 떨쳤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와 평가는 간단하고 단순해서 뭔가 미진한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 근대사가 주목하는 크리스천 여성 선각자, 선생에 대한 재평가를 다시 해보는 자리를 갖기로 한다.
2. 성장
마리아는 1892년 6월 18일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소래마을 대지주의 막내로 태어났다. 이 지역은 한글성경을 최초로 번역한 서상륜·서경조 형제와 언더우드 선교사의 도움으로 우리 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소래교회)가 설립된 곳이었다.
마리아 부모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개화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어머니는 임종하는 순간에도 딸의 교육을 부탁했다. 소래학교 시절 마리아는 남복을 입고 하인들이 메는 보교(步轎)를 타고 등·하교했으며 졸업할 때까지 줄곧 모범학생으로 우등을 했다. 매사에 신중을 기하며 사내 같은 포부를 지녔던 그는 교회와 학교를 통해 서구적 근대교육과 기독교적 인생관을 교육받았다.
정신여학교를 다닐 때는 안창호 김규식과 절친한 숙부 김필순과 고모 김순애의 영향을 받아 남다른 민족의식을 형성했는데, 작문시간에 그는 항일적인 글을 곧잘 써서 당시 일본의 탄압상을 신랄하게 비판하곤 했다.
1910년 정신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마리아는 광주 수피아여학교를 거쳐 정신여학교 수학교사로 부임했다. 그는 기숙사 21호 독방을 썼는데 틈만 나면 기도실에 가서 민족의 장래를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했다.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이 민족을 불쌍히 여기어 모세와 같은 민족의 지도자를 보내주시고 하루 속히 조국의 비참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3.애국활동
1918년 비밀조직인 동경유학생 독립단에 참가하면서 이후 오랜 동지인 황에스더 등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1919년 일본의 심장 한복판, 도쿄에서 펼쳐진 2·8독립선언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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