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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고 한경직 목사님에 대하여

저작시기 2005.10 | 등록일 2006.01.20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故 한경직 목사님에 에 대해서 기독교적 입장에서 접근한 과제입니다.
[기독교와 현대사회]발표 레포트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연혁과 경력, 또한 그분의 활동사항에 대해 작성한 과제입니다.
인터넷과 다른학생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의견을 독창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적정 분량과 창의적인 내용으로 A+받은 과제입니다.

목차

1. 약 력
(1) 출 생
(2) 학 력
(3) 경 력
(4) 수 훈
(5) 저 서

2.복음전파

3.구국활동

4.국제적 연대

5.사회구호활동

6.영락교회!!

7.나의 생각

본문내용

★복음전파
복음전파는 영락교회 설립과 함께 후에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구국활동
여러 구국활동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대한기독교 구제회 결성을 한 예로 들도록 하겠습니다.
한 순수 신앙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또한 민족적인 위기에 대한 기독교계의 현실참여를 위해 한경직 목사는 국군을 돕고 피난민을 구호하자는 취지로「대한기독교구제회」결성을 주도했다. 6월 27일 예수교서회(현 기독교서회)에서 모인 대책 회의에는 장로교에서 한경직 목사, 송창근 목사, 김종대 목사, 김린서 목사, 강원용 목사 등이 참석했고, 감리교에서는 김유순 감독, 박만춘 목사 등과 성결교에서는 김유연 목사 등이 참석하였다. 이 모임에서 한경직 목사는 「대한기독교구제회」회장에 추대되었다. 그러나 곧 밀어닥친 북한 인민군의 서울 진입으로「대한기독교구제회」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해보지도 못한 채 와해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대한기독교구제회」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기독교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시도된 최초의 구국활동이었다는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으며, 이후 1950년 7월 3일 대전에서 결성된 「대한기독교구국회」로 그 명맥을 이어 가게 된다.
★사회구호활동
한국기독교의 어느 목회자보다도 먼저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사회구호사업을 교회의 중요한 사역으로 삼은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신의주제2교회의 담임목사 한경직일 것이다. 1938년 복순이라는 다리 하나가 없는 어린 소녀를 돌보기 위해 그는 남신의주에 보린원을 세웠다. 전쟁은 한경직 목사에게 교회의 사회봉사적 역할의 중요성을 보다 절감하도록 했다. 전시상황의 피난교회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보린원은 계속 유지되었다. 사회봉사 사역의 당위성을 그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부산에 본원을 제주도에 분원을 두어 각각 125명과 40명의 원아들을 돌보았다. 전쟁이라는 특수상황은 보린원 사업만으로는 한계가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전쟁 미망인과 그 자녀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요구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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