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역사,사회학]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에 대한 나의 의견

저작시기 2004.11 | 등록일 2006.01.19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김상천님 의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를 다시본다” 라는 책을 읽고 난 뒤에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에 대한 저의 생각을 고구려 역사를 돌아보며 서술한 것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엇으면 합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 영토확장과 전성기 (領土擴張과 全盛期)
● 고수전쟁 및 고당전쟁 (高隋戰爭 및 高唐戰爭)
Ⅲ. 맺음말

본문내용

김상천님 의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를 다시본다” 라는 책을 읽었다. 가뜩이나 중국의 고구려 역사 왜곡 문제 때문에 현제 우리나라에서 때아니게 고구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영토확장과 전성기 (領土擴張과 全盛期)
고구려는 소수림왕(小獸林王:재위 371∼384) 때 불교를 도입하여 공인하였으며 공인과 태학(太學) 설립(372), 율령(律令) 반포(373)하여 국가체제 정비와 정치적 안정기반을 구축시켰다. 이와 같은 단계에서 즉위한 광개토태왕(廣開土太王)은 정복 군주로서 백제의 한성(漢城)을 침공하여 임진강과 한강선까지 진출하였고, 신라 내물왕(奈勿王)을 원조하여 한반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였다.
고구려 역사를 빼앗기 위한 중국의 행태가 점입가경이다. 대륙에서 웅대한 기상을 펼쳤던 고구려사를 눈뜨고 빼앗길 판이다. 중국은 동북공정프로젝트를 통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켜 남북한 통일 이후 영토분쟁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장수왕의 남하정책에 위협을 느낀 신라와 백제는 나제동맹(羅濟同盟)을 체결하였다. 472년(개로왕(蓋鹵王) 18) 백제는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고구려의 남침을 막기 위해 군사를 청하기도 하였다. 장수왕의 남하정책의 목표는 한강 유역이었으며 475년 백제의 한성을 침공하여 함락하고 개로왕(蓋鹵王)을 패사(敗死)시켜 고국원왕(故國原王)의 한을 풀고 아산만(牙山灣)에서 충주(忠州)일대 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한강 유역을 확보하였다. 이때 백제는 수도를 웅진(熊津, 공주)으로 옮기고, 고구려의 공격을 받은 신라는 죽령(竹嶺) 이북의 땅을 잃었다.

장수왕의 뒤를 이은 문자명왕(文咨明王)은 493년 BC 4세기 이래 800여년간 지속되던 부여(夫餘)를 완전히 멸망시켜 고구려는 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고 중국과 자웅(雌雄)을 겨루었다. 광개토태왕비(廣開土太王碑)와 중원고구려비(中原高句麗碑)가 당시의 광대한 판도를 밝혀주고 있다.

참고 자료

『고조선과 고구려 역사를 다시본다.』, 김상천 저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