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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백자에 관하여

저작시기 2005.04 | 등록일 2006.01.18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우리나라의 도자기 백자에 대한 생각을 닮은 레포트..
백자의 역사에서 부터 백자의 의미.. 그리고 백자에 대한
생각을 담은 레포트 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백자는 14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여러 가지 기법으로 제작, 발달되었으며 조선전기에는 고려의 영향을 받은 부드러운 질감의 연질백자가, 중 후기에서는 중국의 원, 명나라의 흐름을 이어 받은 경고함을 띠는 경질백자가 주를 이루었다. 백자 도자기 발달과정에서 청자가 발전하여 백자가 되는 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14C 도자기는 중국으로부터 청자에서 백자 중심으로 변화한다. 당시 중국과 더불어 유일하게 백자를 만들 수 있었던 우리나라는 왕실을 중심으로 은기를 대신하여 백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조선시대가 시작되면서 유학을 중심으로 사대부들이 새 왕조의 중심세력을 이루면서 백자문화가 크게 성행하였다. 당시 중국의 자기(CHINA)는 유럽인에게는 중국을 CHINA라 할 만큼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우리는 중국의 화려한 자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만의 것을 찾아 독자적인 백자문화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숙하지만 이미 10세기에 백자가 발생하였고 11세기 후반이 되면 고려백자 특유의 양식이 자리를 잡게되었다. 청자상감의 발달과 함께 백자에 청 자토, 자토, 백토 등으로 상감 하는 상감백자도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백자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초기의 백자는 형체가 활달하고 당당하며 이제 백자가 조선시대 도자기의 대표적인 존재로 정착하게 되었음을 알게 해 주었다. 백자에는 회청을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와 철화 백자 등이 있으나 어느 것이나 다 백자의 큰 범위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당시(17C)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도예기술을 받아들여 아리타 도자기문화를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유럽인은 일본의 자기기술을 배워 18C초 유럽 자기를 만드는데 성공하며 거기에 소뼈를 태운 재를 첨가한 본 차이나(Bone China)를 생산하게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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