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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독후감]영조와 정조의 나라 감상문

저작시기 2006.01 | 등록일 2006.01.17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600원

소개글

깔끔하고 세심하게 잘 정리되어 있는 자료입니다. 전공수업에서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로 작성하여 A+을 받은 감상문이니 여기에 여러분의 의견과 자료를 조금씩만 더한다면 원하시는 좋은 결과를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목차

1. 영, 정조대의 시대적 배경
2. 작품 속 탕평정치의 분석과 그 한계
3. 개혁정치 실패의 역사적 교훈
4. 작품 속 ‘탕평’과 ‘대동’을 통한 현대 정치의 방향성 고찰

본문내용

정조는 사도세자와 혜빈홍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죽자 횡사한 영조의 맏아들 효장세자의 양자로 입적되어 제왕수업에 들어갔다. 8세의 나이로 세손에 책봉되었다. 이후 1775년 82세의 연로한 영조 가 대리청정을 시켰고 이듬해 영조가 죽자 그는 25세의 나이로 왕위에 즉위한다. 정조는 항상 죽음의 위협 속에서 세손시절을 보내야 했고 이 기간 동안「홍국영」의 도움을 받으며 가까스로 목숨을 지켜 갔고 철저히 내면을 숨기며 살았다.
그러나 왕위에 오르자 그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버지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는 한편, 파당을 배격하고 새로운 인물을 대거 등용해 친위세력을 형성해 나가기 시작했다. 세손 시절부터 줄곧 그를 경호하던 홍국영을 동부승지로 전격 기용했다가 다시 도승지로 승격 시켰으며 날랜 병사들을 뽑아 숙위소를 창설하여 왕궁을 호위하게 하고 홍국영으로 하여금 숙위대장을 겸직하도록 했다.
이처럼 정조의 신임을 한 몸에 받은 홍국영은 실권을 장악하게 되자 삼사의 소계, 팔도의 장첩, 묘염, 전랑직의 인사권을 모두 총괄하였고, 이에 따라 백관들은 물론 8도감사나 수령들까지도 그에게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 그리고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이 되게 함으로써 정권을 한 손에 쥐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정조의 후궁으로 바친 누이동생 원빈은 입궁한 지 얼마되지 않아 죽었고, 정조 또한 그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을 경계했다. 정조는 그가 스스로 조정에서 물러날 것을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홍국영은 오히려 정권을 독점하기 위해 왕비 효의왕후를 독살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가 이것이 발각되어 1780년 집권4년 만에 가산을 몰수당하고 전리로 방출 되었다. 정조시대는 양반, 중인, 서얼, 평민층 모두가 문화에 대한 관심을 집약시킨 문예부흥기였다. 그러한 문예 부흥을 가능하게 했던 근본적인 동력은 병자호란이후 청을 오랑캐로 인식하던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사상이 사라지고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어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해 나가는 과정에서 형성된 자긍심이었다.
한편 이 시기의 실학이란 조선 후기에 대두된 일련의 현실 개혁적 사상체계를 말하는 것으로 정주 성리학에 바탕을 둔 사회 체계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현실 속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를 구현하려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이수광, 유형원 등을 선구로 시작된 이같은 실학은 이익, 안정복, 박세당, 홍대용을 거쳐 박지원, 정약용, 이덕무, 박제가에 이르러 집대성되고 19세기 말의 개화 사상가들에 의해 재발견된다. 이들은 모두 새로운 사회건설을 통한 새로운 시대를 염원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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