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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찰]분황사에 관해

저작시기 2005.09 | 등록일 2006.01.14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3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분황사에 관해 사찰건축과 가람배치양식 그리고 사찰내의 유물의 사진과 설명

목차

1.분황사의 역사와 배치

2.분황사의유물

본문내용

분황사는 그 절 이름부터가 특이하다. 신라 최초의 절로 보이고 있는 여륜사나 영흥사 같은 그 절 이름 자체에서 ‘법륜을 처음 일으킨(흥륜의)절’ 또는 ‘길이 흥법케 하는(영흥의)절’ 이라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신라 최대의 사원인 황룡사는 진흥왕이 새 대궐을 짓고자 할 때 누런 용이 나타났으므로 대궐을 절로 바꾸어 짓고는 황용을 뜻하는 절 이름인 황룡사로 하였다고 한다. 신라의 대부분의 절들은 창건의 내력이 있으며 대개 불교와 관련이 깊고 인연 있는 이름을 골라서 그 절에 붙였었다. 예를 들면 황룡사와 같은 무렵에 완성된 지원사와 실제사 그 후의 영묘대․통탁사․원영사․초개사․불국사 등 셀 수 없이 들 수가 있다. 하지만 분황사는 창건에 따른 연기가 전해져 있지 않기도 하지만 절 이름에서 먼저 불찰의 일반적 느낌과는 좀 먼 듯한 인상을 준다.
삼국사기에 이르면 분황사는 634년(선덕여왕 3)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원효대사가 거주하면서 화엄경소를 쓴 곳이기도 하며 원효의 아들 설총이 원효의 소상을 만들어 모셨고 이 소상은 고려후기까지 있었다고 전해진다. 원효가 이곳에서 해동종을 완성했다고 하여 해동종을 분황종이라고도 한다. 분황사는 평지 일탑 일금당의 가람배치 탑․금당(金堂)․강당(講堂) 등 사찰의 중심부를 형성하는 건물의 배치를 가리키며, 그 배치는 시대와 종파에 따라 다르다. 고구려와 백제의 경우는 하나의 탑을 중심으로 일정한 숫자의 건물이 배치되는 양식이지만 신라의 경우에는 건물의 수가 일정하지 않고 다양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로서 다른 사찰에서 보듯 중문, 탑, 금당을 중심으로 회랑같은 것이 있었을 것이나 절터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확실치는 않다고 한다.
현재 분황사 경내에는 분황사 모전석탑과 화쟁국사비부, 삼룡변어정(8각 석정)이라는 우물, 도지정 문화재자료 제319호로 지정된 약사여래동상 등이 있다. 또 지금의 분황사 바로 앞에 있는 분황사터에 도지정문화재 제192호로 지정돼 있는 당간지주 한 기가 서 있는데, 이 당간지주가 황룡사지와 분황사의 경계지점을 이루는 표석이 된다고 한다

참고 자료

박경석 『우리나라의 석탑』 역민사 1999
윤창숙 『文化財解說』백산출판사 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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