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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로마공화정과 제정의 차이

저작시기 2005.09 | 등록일 2006.01.14 | 최종수정일 2016.04.18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페이지 | 가격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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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공화정
원로원, 정무관(2명의 집정관執政官), 민회가 권력의 주체이며 집정관은 행정 및 군사의 대권을 장악하고 원로원과 협의하여 민회를 소집하는 권한을 가졌다. 임기는 1년이며 1달씩 교대로 집무했고 상호간 완전한 합의가 필요하였다. 이는 로마공화정이 상호견제와 균형을 유지하였으며 권력의 집중과 비대화를 방지하는 성격임을 드러낸다.
원로원은 형식적으로는 집정관에 의하여 소집되고 집정관의 협의에 응하는 기관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공화정의 최고 권력기관이었다. 원로원이 주체가 되는 이상 어떠한 일에 빠른 의사결정을 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종교를 관장하는 신관(神官)이 있어 민회의 개최일과 신의(神意)를 점하여 민회의 진행을 결정하였다. 이는 로마의 정치가 종교와 밀접하게 관련됨을 의미한다.
평민회에서 호민관을 선출하였고 호민관은 평민의 이익을 옹호하며 정무관이나 원로원의 결정을 거부하는 권한을 가지며 귀족계급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였다.
공화정 초기부터 로마는 끊임없는 전쟁을 하게 되었고 귀족은 전쟁수행을 위해 평민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는 평민들의 역할증대로 평민권을 신장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 군제개편으로 첫째로 중장보병을 중심으로 모든 시민을 시민군으로 편성하고 혈통이나 신분이 아니라 재산소유가 군편제와 계급구분의 기준이 되었다.
군사개편과 병사회 구성은 평민에게 국정에 참여하는 기능을 주었고 부유한 자에게는 실질적인 발언권을 주었다. 이는 신분과 혈통의 구별이 사라지고 시민전체에게 일체감을 주어 로마의 번영을 시민 각자가 느끼게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제정
영토가 확장되면서 도시국가적인 성격인 공화정 체제로 로마를 존속하기 힘들어지고 원로원의 부패와 상황변화에 적절하게 대응치 못함으로 인해 군사령관들이 새로이 정치무대에 등장하였고 이는 후에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우스의 3두정치(頭政治)로 이어진다, 결국 카이사르의 독재로 로마의 공화정은 사실상 형태는 사라지고 유명무실해지게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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