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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보론 : 귀족제설과 관료제설

저작시기 2005.01 | 등록일 2006.01.14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보론 : 貴族制설과 官僚制설에관한 글입니다. 수정없이 바로 제출가능합니다.

목차

1. 학설 논쟁의 배경
2. 귀족제 사회설의 제기
3. 관료제 사회설의 제기
4. 관료제설 비판
5. 귀족제사회설의 보강
6. 귀족제설 비판
7. 학설논쟁의 이해를 위하여

본문내용

1. 학설 논쟁의 배경
귀족이란 혈통, 문벌, 재산, 공적 등에 의하여 일반 민중과는 다른 특별한 정치적 법제적 특권을 부여받은 사람 또는 그 집단을 말하며, 귀족의 성립, 성질, 특권, 칭호 등은 나라나 시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전근대의 신분제사회에서 지배신분층은 넓은 의미에서 모두 귀족이라 할 수 있지만, 귀족이 존재하는 사회를 모두 역사적 의미의 귀족제사회로 볼 수는 없다. 전형적인 귀족사회란 귀족들이 하나의 특권적인 신분으로서 사회를 지배하는 그러한 사회이며, 귀족사회의 기본적인 성격의 하나는 지배적인 특권이 재능이나 능력이 아닌 가문과 혈통에 의해 세습되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특권이 작위를 수여 받음으로써 인정되고, 후손에게 세습되었다. 그런데 고려는 封爵制를 통하여 작위귀족을 배출하였으나, 그러한 특권이 자손에게 그대로 세습되지는 않았다. 고려의 봉작제는 왕족에 대한 것과 신료에 대한 것의 두가지 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왕족 봉작은 왕자·부마·왕비의 父에게 주어진 것으로 公·侯·伯 의 세등급의 작위가 수여되었으며, 이들은 諸王으로 불려졌다. 그러나 손자대에 이르면 봉작의 수혜대상에서 제외되고, 대신 司徒나 司空이라는 훈직이 수여되었다. 신료들에 대한 봉작은 공·후·백·자·남의 5등급의 작위가 수여되었다. 이들 작위는 왕실과 혼인을 맺게 된 경우, 또는 국가에 특별한 공로가 있을 때 주어졌지만, 이것도 자손에게 세습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고려에는 서양에서와 같은 세습적 작위귀족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려의 신분제는 작위제보다는 관리로 出仕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었고, 작위제도 고위관료 및 유공신하에게 주어진 최고의 영예로서 기능함으로써, 고위관직을 지닌 작위 보유자를 거듭 배출할 경우 귀족적 혈통의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었다.
관인의 자격과 출사방식도 나라와 시기에 따라 달랐다. 신라는 골품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로서 관리등용은 骨과 頭品에 의한 家格의 고하에 따라 좌우되었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과거시험을 통한 인재의 등용이 보다 중요한 출사로로 기능하여 왔다. 그런데 고려에서의 관리 충원 방식은 시험을 통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제도와 父祖의 음덕으로 관직에의 진출이 가능한 음서제도를 동시에 운용하였으며, 이같은 고려의 특수한 운영체제로 인하여 고려사회를 보는 두가지 시각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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