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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창덕궁

저작시기 2005.11 | 등록일 2006.01.13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500원

목차

Ⅰ. 답사를 가기에 앞서

Ⅱ. 창덕궁의 역사

Ⅲ. 창덕궁 의 배치와 특징

Ⅳ. 창덕궁의 건축기법
(1) 돈화문
(2) 금천교
(3) 인정문
(4) 인정전
(5) 희정당
(6) 대조전
(7) 낙선재
(8)창덕궁의 후원

Ⅴ. 일제시대 창덕궁의 아픔
(1) 일제시대 화재와 중건
(2) 근대화의 발상지

Ⅵ. 자연과의 조화

Ⅶ. 세계문화유산 등록

Ⅷ. 답사를 마치고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아픔만을 지니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창덕궁)

본문내용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기로 하고 경복궁을 창건한다. 그러나 2대 정종은 다시 개성으로 환도하였고 3대 태종 때에야 수도를 한양으로 옮길 준비를 하면서 경복궁 동쪽에 별도의 궁궐 조성이 있게 된다. 곧 태종 4년 (1404) 10월부터 향교동에 궁궐 조성이 시작되어 태종 5년 2월에는 정전인 인정전, 편전인 선정전, 침전인 희정당, 대조전 등 중요 전각이 건립되고 10월에는 대체적인 공사가 마무리되었고 궁의 이름을 창덕궁이라 하였다. 먼저 창건된 경복궁의 동쪽에 조성된 창덕궁은 정궁이 아닌 이궁의 성격으로 건립되고 경복궁에서의 상대적인 위치로 ‘동관대궐’ 또는 ‘동궐’이라 불린다. 초창기의 창덕궁이 외전 74칸, 내전 118칸이라는 기록을 보면 지금의 창덕궁의 규모보다는 작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 뒤 태종 12년에는 돈화문이 건립되었고, 세조9년에는 약 6만2천 평이던 후원을 넓혀 15만여 평의 규모로 궁의 경역을 크게 확장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40년(1607)에 중건하기 시작하여 광해군 5년(1613)에 공사가 끝났으나 다시 1623년의 인조반정 때 인정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었다가 인조25년 (1647)에 복구되었다. 그 후에도 여러 번 화재가 있었으며, 1917년에 대조전, 희정당 일곽이 소실되어 1920년에 경복궁의 교태전, 강녕전 등 많은 건물을 철거하여 창덕궁으로 이건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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