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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강요배

저작시기 1997.01 | 등록일 2006.01.13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주제로 그리는 민중화가
강요배[姜堯培, 1952 ~]에 관한 작가론

목차

1. 생애(성장과정,성격)
2. 조형적 특징
3. 어록 및 평가
4. 결론
■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생애(성장과정,성격)

강요배는 1952년 제주시 변두리 삼양에서 태어나 척박한 땅위에 세워진 작은 토담집에서 자라났다. 천문, 지리, 역서들을 열심히 읽으시는 박식한 농사꾼 아버지에 머슴을 두지 않고 자력으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농토만을 가진 환경이었다. 197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1982년에 동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교편생활을 시작하여 새로운 미술교육을 펼치겠다는 각오로 교과서는 제쳐둔 채 학생들과 운동장에 몰려나가 주전자로 물장난도 치고 축제 때에는 학생들과 공동으로 대형걸개그림 창작하여 학교를 뒤덮곤 했다. 이 무렵인 1980년 그는 「현실과 발언」의 동인으로 합류했다. 현실을 화폭에 담아야 한다고 외치며 「민중미술」의 기치를 든 그들은 반문명 반서구 반자본주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작품제작에 매달렸다. 그후 `12월전`, `현실과 발언전`, `도시와 시각전`, `젊은 의식전`, `시대정신전`, `삶의 미술전` 등에 참가하면서 주로 사회의 모순에 대해 발언하는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민중미술의 지나친 정치성은 이념보다는 인간을 사랑했던 그에게 회의를 안겨주었다. 그런 그에게 「4.3」은 폭풍처럼 다가왔고 그는 교편을 접고 오로지 「4.3」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제주의 역사, 특히 「4.3」에 관련된 자료라면 모조리 수집했고 스무 살 때 떠난 고향에 내려가 피바람이 불었던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촌로들의 생생한 증언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역사의 진실을 알려야겠다는 신념으로 서울근교 퇴락한 농가에 파묻혀 3년간 벌인 고투 끝에 마침내 50편의 「4.3연작」을 완성했다. 1992년 `제주민중항쟁사건`을 주제로 첫 개인전을 연 계기로 고향인 제주도에 정착하였다. 마흔 살의 중년이 되어 다시 찾은 고향에서 그는 산으로 바닷가로 옮겨 다니며 제주의 자연을 화폭에 담았고 이제는 제주의 자연을 그리는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1998년에는 학고재의 우찬규 사장의 주선으로 금강산과 평양지역 문화유적의 답사기회를 가지고 1999년 <금강산 전>을 가졌다. 1998년 12월 18일에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회가 시상하는 민족예술상을 수상하였다.
강요배는 큰 키에 말쑥한 얼굴, 짙은 눈썹과 우뚝 선 코, 웃으면 이빨을 온통 다 드러내 놓는 좋은 인상이지만, 고집이 있어 보이고 항상 습기 찬 모습이다.

참고 자료

_강요배, 10호 창작노트, 민족미술잡지, 91.1
_강요배, 민족미술, 93.6, p.16-17
_이석우, 역사의 들판에서 내가 만난 화가들(하), 소나무, 1995, p.33-p.52
_윤진섭, 한국모더니즘 미술연구, 재원출판, p.155-p.181
_오광수, 한국 미술의 현장, 조선일보, 1988, p.57-p.67
_ 오늘의 한국 미술, 가나아트, 1993, p.24-p.33
_ 현실과 발언, 열화당,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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