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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임진왜란(壬辰倭亂)의 전개와 참상, 의의

저작시기 2005.07 | 등록일 2006.01.12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임진왜란 관련 레포트를 쓸 때 도움이 되실 겁니다.

목차

1. 들어가기에 앞서

2. 들어가서
ⅰ) 첫째 마당 : 임난전의 국내·외 상황
ⅱ) 둘째 마당 : 임난 발발(통계수치)
ⅲ) 셋째 마당 : 임난 전개·참상(피해상황)
ⅳ) 넷째 마당 : 임난후의 국내·국제적 의의

3. 나오면서

본문내용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52년)에서 1598년(선조31년)까지 2차례에 걸쳐 왜군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온 싸움을 일컫는다. 1592년 임진년의 일본군의 갑작스런 침공에 의해 한반도는 전쟁에 휩싸인다. 하지만 7년간의 전쟁은 조선의 관군 그리고 세계에 유례가 없었던 의병군의 조직적인 활동, 그리고 자신의 국익을 위해 출동한 명나라 군사의 연합작전으로 결국 조선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그러나 이 전쟁은 조선이 이겼지만 이긴 것이 아닌 전쟁이었다.
임진왜란은 왜 일어나게 되었을까? 무슨 필요성과 조건이 일본군으로 하여금 조선을 침략케 했을까? 간단히 말해서, 형편없이 허약한 조선의 국방력과 당시 일본을 지배한 권력의 중앙집권체제 형성의 필요성.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신적인 야망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조선의 국방력은 군역이 지배 양반층의 수탈에 약용되었기 때문에 형편없이 취약했다. 한편, 일본은 침략 전쟁을 일으킬만한 충분한 필요가 있었다. 100여 년 전부터 일본은 지방의 유력자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은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국을 대강 통일함으로서 끝났다.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하기는 했다고는 하지만, 지방세력을 확실하게 장악하지는 못했다. 관동의 도쿠가와와는 화평의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전쟁통에 빈발한 하극상의 풍조가 만연되어 있었고, 전쟁이 끝난 후 무사의 역할이 감소되면서 무사들의 불만이 많았다. 상인들도 대외침략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고자 했고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컸다. 도요토미는 지방의 무력을 약화시키고 전쟁을 통해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 군사 체제를 다시 세울 필요가 있었다. 이것을 모두 성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조선침략이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7여 년에 걸친 임진왜란을 대략적인 통계수치자료를 통해 조선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객관적인 수치로 임진왜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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