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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정치의 이해]중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정리

저작시기 2002.11 | 등록일 2006.01.08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우리와 일본의 정치적인 문제와 같이 중국과 일본 또한 역사적으로 많은 갈등으로 인해 정치적 사회적으로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본 보고서는 이러한 문제들을 알아보고 이를 바라보는 양국의 입장을 통해 문제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풀 것인가에 대해 시사점을 제공해 주는 보고서입니다. 중일 관계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시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1. 중일 전쟁

2. 최근 중.일 관계

3. 중국의 입장
1) 강주석의 방일.
2) 과거사 사죄 문제
3) 강주석의 자작시에 숨겨진 日비판

4. 일본의 입장
1) 일본 천황 과거사 어록
2) 과거사 사죄 거부

5. 주변국 입장
1) 대만입장 - `과거사`힘겨루기의 중·일관계서 미묘한 대만
2) 중언론의 일본 비난
3) 일본 언론의 경종 울리기
4) 일본, 중국에 서면사죄 왜 꺼리나

6. 평가 및 해결 방안

본문내용

중일 전쟁은 1937년 노구교사건을 발단으로 일어난 중국 일본간의 전쟁으로 1941년에 일본이 미국, 영국에 대해 개전하고 이어서 중국도 연합국 측에 가담하게 되자 이 전쟁은 태평양의 일부가 되었고 따라서 제 2차 세계 대전의 일부로 되었다.
원인 ; 만주사변 이후 중국 국민의 배일감정은 극도에 달하게 되어 중일 양국간의 대립 가능성은 희박하게 되었다. 그 후에도 일본은 중국에 대한 침략을 계속하여 내몽고와 화북 지방을 지배하기위하여 그 곳에 일본의 괴뢰 정부를 수립할 공작 등을 추진하였다. 장개석은 일본에 대항하기에 앞서 먼저 국내의 정치 기반을 굳히기 위하여 내전정지, 일치항일을 부르짖는 국민의 여론을 외면한 채 일본과의 충돌을 회피하면서 공산군 소탕을 계속해 나갔다. 그러나 1936년의 서안사건을계기로 항일 투쟁을 위한 국공합작의 방향으로 굳어지게 되었고 그 후 화북지방에서는 중일 양국군 간에 분쟁이 격화되어 일촉즉발에의 긴장 상태에 들어있었다.
경과 ; 1937년 7월 7일 북경 교외의 노구교에서 중일 양국군간에 불의의 충돌 사건이 발생하자 협상에 의한 현지 해결이 시도외었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일본은 강경 태도를 취하여 중원군을 중국에 파견하였으며 싸움은 선전포고도 없이 양국간의 전면적인 전쟁으로 급속히 확대되어 나갔다. 개전 이후 국공합작은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서 항일민족 통일전선이 결성되었으며 중국 국민
은 일치단결하여 항일전에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군사적으로 우세한 일본군은 7월말에 북경, 천진을 점령하고 이어 화북 지방의 주요 도시들을 공략해 나갔다. 화중 지방에서도 일본군은 상해에서 완강히 저항하던 중국군을 격파하고 12월에는 중국의 수도 남경을 점령하였다.
일본군은 온갖 만행을 자행하며 진격을 계속하여 1938년 10월까지는 서주, 광동, 무한 등을 점령하였으며 그리하여 공업지대와 대도시들이 몰려있는 중국의 동부 지방을 거의 장악하였다. 그러나 일본은 이를 위해서 약 60만의 대군을 투입하였고 막대한 국력을 소모하여 더 이상의 진공작전은 곤란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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