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평가점수A

[체육 무도]검도의 역사

저작시기 2005.03 |등록일 2005.11.2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검도가 무도냐 스포츠냐 오랫동안 甲論乙駁하여 왔다. 그러나 오늘날의 검도는 새로운 인식하에서 새로운 국면은 갖기에 이르렀다. 체육이 엘리트체육에서 대중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체육으로 확산함에 따라서, 검도도 사회체육부문의 한 장르 속으로 현대적 각광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무도라는 전세대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스포츠 검도로서의 카테고리로 선명화 되어가는 것을 우리는 재인식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스포츠라 할 때는 어떤한 민족에게서나 또는 국가에서 발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체육문화가 국제화됨에 따라 그 울타리가 없어져 간다는 것을 현대 올림픽사상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은가.
하나의 스포츠가 시초에는 한 민족적인 것에서 발생하여 세계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가장 민족적인 문화가 가장 국제적인 문화로 선택받는다. 물론 이것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인류화되어가기 위한 역사적인 process가 뒤따른다는 것은 당연하다. 이 점에서 우리 한국은 일본 사람들이 가장 독특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검도를 일본 사무라이 검이 아닌 국제화된 스포츠 검도이념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스포츠 검도의 渡來
2. 한국검도의 脈
3. 검도경기의 脈
4. 본국검 연구
5. 중앙도장의 꿈

Ⅲ. 결 론

본문내용

동양적 검도판도권에서 한국검도의 역사성과 자존심을 찾기 위하여서는 무엇 보다도 우리의 고무예 안에서 劍技譜를 찾아야 했다.
동양 3국 중 중국은 세계문명 발상지의 하나로 황하문명은 기원전 1300년부터 청동기 시대로 들어간 만큼 고무예에 있어서도 찬란하다 하겠다. 중국검술의 一端을 개관하기 위하여 우선 검기편 중에서 몇 가지만을 찾아보자. <武編> <紀敎新書> <陣紀> <長槍法選> <單刀劍選> <武備志> <十三刀法>의 劍譜가 현존하고 있는 것을 봐도 짐작할 수 있다. 또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문화유입에 급급하였다 할지라도 陰流, 一刀流, 神道流를 중심으로 200여 유파가 각각 갖고 있는 劍譜는 민감하게 받아들인 검술문화를 다양하게 보존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우리 한국으로서도 당연히 하나의 unique한 검술문화는 있었다.
그러나 정치지리적 입장에서 볼 때 한반도는 외세의 간섭과 침입에 시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일제 36년 동안 독점 아래서 모든 것을 말살당해서 신라의 <武島兵法>, 고려의 <金海兵書>는 이름만 남아있을 뿐이다. 21세기를 향한 우리는 한국검도를 고무예 속에서 그 뿌리를 규명하고, 검도의 正史를 밝히되 스포츠 검도를 유입한 한국이 국제검도계에서 엄연한 존재라는 논리를 세우고 그 이념을 확인해 보겠다는 것이다.
1960년대 지금은 고인이 되신 분이지만 유일하게 조선 고무예를 추구하여, 일본검술이 아닌 것을 주창하던 송성식 선생이 있었다. 그 당시로서는 실로 고독한 조선검술 추구자였으나, 조선적인 무예를 추구하겠다는 그 의욕은 높이 평가하여야겠다고 본다. 이러한 한국적인 것의 추구는 1971년 10월 23일 부로 이호암 대학연맹 지도위원이 `검도에 있어서 하카마 배제에 관한 件`을 한국검도회 회장 앞 (검도회 각 이사, 전국대학연맹 회장, 전국 중고등 검도연맹 회장 참조)으로 제출하였으나, 묵살당하고 말았다.
점차 한국 고무예 또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연구는 왕성해 가서 1977년 10월에 이호암이 `한국검도론`을 발표하고, 성균관대학에서 이종림이 석사학위 논문으로 1983년 12월에 `한국고대검도사에 관한 연구 (신라 본국검을 중심으로)`를 발표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