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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단군릉 자체에 대한 분석

저작시기 2004.05 |등록일 2005.11.1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단군릉 자체에 대한 분석

목차

서론
본론
1. 단군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단군`, 신화 속의 인물인가 실존 인물인가?
단군과 고조선사
2. 단군릉 발굴 개요
3. 단군릉 발굴과 변화된 북한의 역사인식
4. 단군릉은 과연 단군의 무덤인가 -「단군릉」에 대한 의문점
5.「단군릉」과 남북한 역사인식의 비교
나의 결론-단군릉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본문내용

`단군`, 신화 속의 인물인가 실존 인물인가?

단군에 관한 전승은 고려시대의 승려 일연(1206~1289)이 지은 『삼국유사』이래로 여러 문헌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모든 문헌들은 단군을 고조선의 건국 시조로 적고 있다. 고조선은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이다. 따라서 단군은 우리 민족 최초의 지배자요, 건국시조라 볼 수 있다. 문제는 단군이 신화 속의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단군은 신화 속에 등장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표현이라는 기존 학계의 입장과 단군신화는 역사적 사실이며 단군은 실존 인물이라는 입장의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신화의 의미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신화란 원시․고대인들이 자신들의 논리구조에 따라 어떤 사실을 표현하고 설명하는 방식이다. 고대사회의 지배자들은 이러한 신화를 건국신화로 만들어 자신들의 지배가 신성하고 정당함을 홍보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하였다. 단군신화 또한 고조선이라는 국가가 세워지고 난 이후에 건국신화로 만들어진 것이 구전되다가 고려시대에 정리된 것이다. 그렇다면 단군신화에 나오는 단군은 신화 속의 상징 인물로 등장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삼국유사} 단군조선" 항목에 보면 단군의 완전한 명칭은 단군 왕검이다. 여기서 단군은 무당(제사장)이라는 말을 한자를 차용[音借]하여 표기한 것일 뿐이다. 한자로는 `제단 단(壇)`자를 쓰는데, {삼국유사} 이후의 단군 기록에서는 `박달나무 단(檀)`자로 바뀌어 기록된다. 제단이나 박달나무 모두 신성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이것에 주목하기도 하지만, `단`이라는 말의 뜻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텡그리`나 `탱려` 등 무당(제사장․하늘)이라는 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일 뿐이다. 왕검은 임금이란 뜻으로 정치적 지배자를 말한다. 따라서 `단군 왕검`은 우리 역사에서 계급이 발생하는 시기의 지배자가 무당(제사장)이면서 임금(왕검)과 같은 역할을 하였음을 말해준다. 즉 단군이라는 고유한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단지 여러 명의 단군(제사장)이 여러 지역에서 부족국가를 이끌었던 것이 초기 국가를 형성하던 단계의 우리 역사 모습이다. 단군신화에는 단군이 150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고 나온다. 이것은 단군이 실존했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역대 단군[지배자]들이 대를 이어가며 통치한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 어느 나라나 건국신화와 시조에 대한 관념은 있다. 그러나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국가의 시조가 민족의 시조로 승화되어 실재한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것은 한국 역사의 특수성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즉 해방 후 식민 잔재와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황에서 80년대에 들어오자 군사독재 정부의 역사인식에 영합하는 보수 우익집단이 등장하였고, 이들은 묵언의 정부 지원과 대중의 호응에 힙입어 이른바 웅대한 한민족사를 역사적 사실로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사회과학출판사, 1994 『단군과 고조선에 관한 연구론문집 - 북한의 단군 및 고조선 제1차 학술토론회 논문집』
이형구 엮음, 1999『단군과 고조선』살림터
노태돈, 2000 「북한 학계의 고조선사 연구동향」『단군과 고조선사』사계절
안병우․도진순 편, 1990『북한의 한국사인식』(Ⅰ)(Ⅱ) 한길사
박광용, 2000「북한학계의 단군 인식과 "단군릉" 발굴」『역사비평』2000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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