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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분 벽화를 통해본 고구려 문화

저작시기 2005.06 | 등록일 2005.08.28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한학기동안 열심히 작성해서 A+ 맞은 자료에요.
부디 잘 참고하셔서 좋은 점수 받으시기를 진심으로
바랄께요.. ^^*

목차

1. 서 언
2. 5세기의 고분벽화
3. 평양시대의 전개와 고구려문화
4. 맺음말

본문내용

1. 서 언
427년의 평양천도가 장수왕 이전부터 추진되었던 고구려의 국가적 과제의 하나였고, 그 파급효과가 고구려 뿐 아니라 주변국가들에도 미쳤음은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졸본에서 국내성으로의 천도 뒤, 무려 400여 년만에 '국토의 남부 깊숙한 곳, 고조선과 낙랑의 옛터 한가운데로' 이루어진 수도 이전은 고구려 정치·사회·경제의 지형도를 크게 바꾸는 일이었으며, 문화의 내용과 성격에도 간단치 않은 변화를 가져오게 될 대형 사건이었다. 4세기말 이미 천도의 기초가 놓여졌고, 중앙권력 내부에서의 의견 조율이 상당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평양으로의 천도가 실행되자 지배세력 안에서 다시 옛 서울과 새 서울의 관계설정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가 제기되어 이를 둘러싼 의견충돌이 있고, 갈등이 고조될 정도로 '천도'는 국가적 차원의 관심사였고, 그로 말미암은 영향도 컸다. 이 글에서는 427년의 천도로 이른바 '평양시대'가 열리면서 고구려사회에서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으며, 이 변화를 당대의 문화산물들은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5세기 평양권 고분벽화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잘 알려졌듯이 668년의 평양성 함락으로 마무리되는 장기간의 국제전, 뒤이어 수 년 동안 계속된 고구려 부흥전쟁을 겪으면서 고구려의 주요도시들은 '돌무더기 위에서 이리와 승냥이가 우짖는 곳'이 되었으며, 주민들은 포로로 붙잡혀가거나 산간벽지로 숨어든 상태였다. 후세로 하여금 평양시대를 읽고 보며 되살릴 수 있게 하는 것은 고분벽화와 몇 안 되는 고분 출토유물들, 불기운이 완연한 기와와 토기조각, 건물터 정도에 불과하다. 5세기에 이르러 고구려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평양, 이 평양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고구려 문화의 흐름을 짚어내는 데에 가장 적절하면서도 다른 선택의 여지를 없게 하는 자료가 고분벽화인 것도 이런 까닭이다.

2. 5세기의 고분벽화
5세기 고구려 문화의 전개과정과 관련하여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가 벽화고분의 집중적 출현이다. 현재까지 발견·조사된 105기의 고구려 벽화고분 가운데 40기 이상이 이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5세기 편년 벽화고분의 60%가 넘는 26기 정도가 평양권에 자리잡고 있다. 이 시기가 벽화고분의 시대이며, 이러한 흐름을 주도한 곳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서울과 그 주변지역이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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