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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실무] 고구려민족문화 답사와 관광

저작시기 2005.08 |등록일 2005.08.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3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동북공정 주장으로 고구려 역사에 대한 왜곡의 실상을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임

목차

□ 첫째날 ; 7월 27일(수)
○ 답사 참가 동기
○ 출국심사
○ 자리 씨름
○ 인천항을 떠나는 배
○ 선상 뷔페저녁과 여행에 대한 생각

□ 둘째날 ; 7월 28일(목)
○ 하선준비
○ 단둥페리호와 앞간판의 휴식공간
○ 조식과 압록강 하구
○ 단둥하의 입국심사
○ 단둥시와 가이드의 설명
○ 월량도, 신의주와 위화도 조망
○ 점심식사와 현지식
○ 압록강변과 단둥시내의 물난리
○ 옥수수 밭과 야외풍경
○ 여진족의 개고기에 대한 전설
○ 중국인의 식문화, 주거문화
○ 오녀산성(고구려 최초 도읍지)
○ 사랑밭 새벽편지
○ 통화시 저녁식사와 숙소(휘풍호텔) 체크인
○ 중국생산 대형차와 발마사지

□ 셋째날 ; 2005. 7. 29(금)
○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길
○ 장백산대계곡
○ 백두산 천지
○ 전신맛사지

□ 넷째날 ; 7월 30일(토)
○ 모닝콜과 삼륜차
○ 고구마와 소나무
○ 광개토대왕의 능과 비
○ 장수왕릉 관람
○ 북한 만포마을 조망
○ <묘향산식당>에서의 노래공연 관람
○ 집안을 떠나는 아쉬움
○ 동북공정에 대한 반론(경남대 교수 전달)
○ 한(漢)족의 화장문화에 얽힌 설화
○ 단둥시의 하늘에는 / 숯불구이 불고기
○ 압록강변 공원야간산책
○ 3인용 자전거 타기

□ 다섯째날 ; 7월 31일(일)
○ 호산장성으로 향하는 길, 5일장
○ 호산장성 입성과 수원화성
○ 호산장성의 구조 및 건축물
○ 일보과(一步跨)의 사진촬영
○ 위화도 배경 사진촬영
○ 자전거에도 번호판 부착
○ 청류관 점심식사 분위기
○ 청류관 노래공연 관람
○ 쇼핑후, 단둥항으로

□ 여행 후기

본문내용

○ 장수왕릉 관람

광개토대왕의 능과 비각 입구 주차장에서 북동쪽 산으로 오르는 길 500여 m 거리에, 광개토대왕릉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는 장수왕릉에 도착하니 10시 45분이었다. 가이드는 장수왕이 효도하는 마음으로 아버지인 광개토대왕을 항사 바라볼 수 있는 이곳에 능의 정하였다고 한다. 일명 동방의 피라미드라고 불리는 바답게 장수왕릉의 규모는 대단하였다.
다행히 장수왕릉은 각 면마다 3개의 커다란 지지대가 버티고 있어 온전히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중간 정도의 위치에 묘실이 위치하였는데, 왕과 왕비를 함께 모신 합장릉 구조이다. 장수왕릉에서 남동편 모서리쪽에는 석릉이 하나 있다. 집안지역의 수많은 고분들과 구별되는, 유별난 배총(陪塚)이 장수왕릉에는 있는데(출처 : 김기웅 저 <고분>, 대원사, 1995), 가이드는 장수와의 둘째부인의 능이라고 설명하였다. 장수왕릉의 규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작았지만, 그 위용은 웅장하였다. 배총은 현재 1기만 남아있는데, 과거에는 네모서리에 각각 1기씩 있었다고 한다.

○ 북한 만포마을 조망

장수왕릉의 답사를 마친 뒤, 버스를 타고 11시 22분에 집안 시내를 거쳐, 압록강변으로 이동하였다. 거리는 멀지 않았으나, 시내를 통과하는 관계로 10여분 걸려 11시 45분에 강변 선창에 도착하였다. 구명조끼를 입고, 운전기사를 포함하여 8인용 쾌속요트를 타고 북한의 만포마을을 조망하며, 강바람을 쐬는 놀이였다. 요트를 타고 놀이를 하는 동안 북쪽의 강변을 따라 난 길에서는 북한 주민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도 보였다. 집안은 여기저기 건물들이 들어서 마을답게 형성되어 있었으나, 만포마을은 산자락 끝에 있는 마을로, 집과 건물은 나무에 가려 지붕만 띄엄띄엄 보일 뿐 마을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 보다 관심이 깊은 일행들은 만포마을을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요트에서 내려 강변을 살펴보니 강 위쪽 저 멀리에는 ‘동’ 제련소의 굴뚝이 우뚝 솟아있었다. 일행이 강물이 있는 곳으로 난 계단으로 내려가 강물에 손을 담가보고, “물이 차가워서 물 속에 5분도 채 못있겠다.” 고 말하였다. 손을 넣어보니 강물이 매우 차가웠다. 강물은 비가 내려서인지 흙탕물이었다. 북측 강변에는 꽤 높은 산이 있는데, 산 꼭데기까지 개간을 하여 무엇인가 심어 경작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산에는 큰 나무들이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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