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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 원자폭탄의 발명과정과 그 위력

저작시기 2005.08 |등록일 2005.08.0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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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만약 아돌프 히틀러가 자기 나라 과학자들이 하고 있던 일에 좀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핵시대는 나치 독일에서 먼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1938년 12월, 베를린의 카이저 빌헬름 화학연구소에서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이 6년간의 실험 끝에 우라늄의 원자핵을 분열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분열현상은 그때까지는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생각되어 왔었다. 그들의 발견은 연쇄반응을 제어할 수 있고 거대한 양의 에너지를 방출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들이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사실은 빠른 속도로 과학계에 퍼져 나갔다.
덴마크의 위대한 물리학자 닐스 보어는 그 사실을 나치독일에서 망명해온 두 명의 동료를 통해 알았다. 1939년 초, 보어는 미국으로 건너가 그 사실을 미국 과학자들에게 전하게 된다. 이 사실을 전해 받은 미국 과학자들 중에는 이탈리아에서 망명온 엔리코 페르미와 헝가리에서 망명해 온 레오 질라드라는 두 명의 저명한 물리학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핵분열을 군사목적에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에 납득시키는 데 성공한 것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였으며, 그 자신도 독일계 유태인 망명자였던 알버트 아인슈타인이었다.
루스벨트는 그 이론을 믿었지만, 다음 2년 동안 정부자금에 의한 원자력 연구는 진전이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사실상 제조과정은 이미 시작된 것이었으며, 1939년에 과학자들이 당면하고 있던 문제는 원자병기를 개발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독일보다 빨리 개발하느냐였다. 과학연구 개발실의 책임자 바네바 부쉬가 대통령으로부터 원자력연구에 전면적 노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에 대한 최종적인 승인을 얻어낸 것은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이 있기 불과 하루전인 1941년 12월 6일이었다. 이어서 시작된 과학․군․산업계 협동계획은 어떠한 공격에도 패할 줄 모르는 강인성, 그 거대한 공업능력, 또한 과학과 기술에 대한 믿음이 뒷받침된 그야말로 미국다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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