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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대사 한국사] 광개토대왕비와 비려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8.02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한국고대사 시간에 제출한 레포트입니다.
광개토대왕비에 관련된 주제를 찾는 분께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목차

1.서론

2.본론
1) 광개토대왕은 누구인가
2) 비문의 구성
3) 영락 5년(395)의 기사에 나와있는 비려 정벌기
4) 비려의 위치
5) 비려의 성질

3.결론

본문내용

歷史란 과거의 발자취를 더듬는 것이긴 하지만 순수히 과거로서의 의미만을 지닐 때에는 그것을 역사라 부르지 않는다.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 하더라도 오늘의 우리 속에 생생히 살아 있고 나아가 우리들의 미래를 밝혀 줄 수 있는 의미를 지닐 때에야 진정한 역사라 이름한다. 민족사의 영광을 위하여 명멸하였던 숱한 인물도 이러한 성격을 지닐 때 우리는 그들에게 역사적 인물로서의 의미를 부여한다. 이러한 점에 있어 역사의 태동기를 지나 뚜렷한 실체로서 부각되는 인물로 廣開土大王을 들 수 있다. 高句麗의 정복국가로서의 성장과정 중에서 廣開土大王代는 高句麗史를 구획하는 영광의 시대라 할 것이며, 民族史에 있어서는 격동하는 동아의 정세속에서 움트기 시작한 민족의식을 기반으로 하여 새로운 통일질서의 구축에 부심하던 전환기라 할 것이다. 따라서, 高句麗史 연구에 있어서 이 시기가 갖는 역사적 의미가 보다 부각되어야 할 것이며, 大王의 훈적을 전하는 廣開土大王碑도 자연 이러한 시각에서 보다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능비가 재발견된 이후 그 연구는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고대사의 발전과정을 해명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져 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능비는 참모본부를 비롯한 일본제국주의관학에 의해 ‘임나일본부'라는 허구를 토대로 한 古代 日本의 한반도 진출을 합리화하기 위한 근거로서 변조 제시되었던 까닭에, 이후 근 1세기동안 능비연구는 고구려사를 해명하였다기 보다는 古代 한일관계의 주도권 논쟁을 둘러 싼 공방으로 한일학계의 최대 쟁점이 되어왔다. 능비의 변조와 왜곡은 최근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나 망언 등에서 보는 것처럼 일본인의 식민지사관에 입각한 한국사 왜곡의 출발점이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참고 자료

1. 박진석, 『高句麗 好太王碑 硏究』, 「제 5 장 好太王碑文 영락 5년의 碑麗에 대한 고증」, 아세아 문화사, 1996.
2. 박영규, 『고구려 본기』, 웅진, 1997.
3. 서길수, 『고구려 유적 답사』, 「홀본․국내성 편」, 사계절, 1998.
4. 김부식, 『삼국사기』, 이재호 옮김, 권 제18, 「고구려 본기」 제6, 광개토대왕, 나랏말씀, 1997.
5. 김부식, 『삼국사기』, 이강래 옮김, 권 18권, 「고구려 본기」 제6, 광개토대왕, 한길사, 1998.
6. 임병주, 『한권으로 읽는 삼국왕조 실록』,들녁, 1998.
7. 고구려 연구회, 『고구려 연구』, 서영수, 「광개토대왕비문의 연구사적 검토」, 학연문화사1995.
8. 박시형, 『광개토대왕릉비』, 조선사회과학원출판사,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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