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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수 시생애를 통한 시론 탐구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7.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무엇이 시인가’

2.깨닫기
 2-1. ‘암중(暗中의) 시’
 2-2.관념의 공포

3.지우기
 3-1.서술적 이미지와 비유적 이미지
 3-2.모차르트와 같이, 더 큰 것에 대한 지향

4.어떻게 시가 되는 가

본문내용

시는 밖으로 드러나야 시가 된다. 시는 쓰여 지기 전에는 아무 데도 없다. poem이란 작품을 뜻하는 말이다. 밖으로 드러난다는 것은 형태form를 가진다는 것이 된다. 형태는 시에서 행 구분 연 구분과 함께 그 속에 문체style까지를 포함된다. 이것이 바로 운율이다. 행 구분과 연 구분과 문체가 바로 운율인 것이다. 당연히 여기서의 운율은 운율이라는 낱말 자체가 지닌 사전적 뜻이 아니다. 시에서의, 그러니까 시가 운율을 가진 이야기라 말하는 속에서의, 시의 운율이다. 다시 말해 시는 밖으로 드러나기 위한 형태로 운율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행 구분과 연 구분을 파괴하는 산문시는 시가 아닐까? 산문시도 시라고 한다면 형태상의 시와 산문은 구별할 수 없는 것이 된다.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시는, 운율을 가진 이야기다. 사람들은 간혹 이 말에서 운율이라는 단어에만 집착하며 이야기를 보지 못한다. 이야기 즉 내용이다. 물론 사상가들은 또 서정시에 대해 -우리가 산문시에 대해 던진 질문과 마찬가지로- 시를 공리의 눈으로 보지 말 것, 이런 따위 시가 무슨 소용일까? 김 춘수,『김 춘수 사색사화집』, 현대문학, 2002, p.15
라 비판한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한다. 시는 운율을 가진 이야기이다. or이 아니라 and다. 운율과 이야기의 교집합을 포함한 전체집합이 시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시가 운율을 가진 이야기라는 말은 틀렸다. 정확히 말해 시는 (시의)운율을 지닌 (시의)이야기이다. 운율이든 형태든, 이야기이든 내용이든 결국에는 시의, 시에서의 가 되어버린다. 시는 시인 것이다. 우리가 나무를 나무라 말하는 것은 나무이기 때문이지 나무이기 위한 조건을 충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무를 푸른 잎과 갈색 줄기를 가진 것으로 단정해 버린다면 세상에는 나무가 아닌 나무가 너무 많다. 나무는 나무이기 때문에 나무다. 시 역시 시이기 때문에 시일뿐 시여야 하는 조건은 없다.

참고 자료

『한국현대대표시론』, 김 춘수 등, 태학사, 2000년
『도시 시와 해체 시』, 김 준오, 문학과 비평, 1992년
『김 춘수 사색사화집』, 김 춘수, 현대문학, 2002년
『해방기한국시문학사』, 김 용직, 한학문학, 199년
『김 춘수의 시세계』, 김 두한, 문창사, 1997
『김 춘수 시 전집』, 김 춘수, 민음사, 1994
『김 춘수 전집 1 시』, 김 춘수, 현대문학, 2004
『김 춘수 전집 2 시론』, 김 춘수, 문장사, 1984
「한국현대대표시인 101선집」, 김 춘수 편, 문학과 사상사, 2003년
「시세계」, 2005년 봄호, 시세계사, 2005년
「김 춘수의 시론 시 연구」, 이 형권, 한국 언어문학회, 1998
「김 춘수 전기시의 자아인식과 미적 근대성」, 남 기혁, 한국시학회, 1998.
「모더니티의 개인적 자각과 실현」, 허 윤희, 반교어문학회, 1996.
「혼돈과 겹침의 시학」, 이 경교, 한국현대문예비평학회,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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