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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항쟁] 광주 항쟁으로 읽는 현대한국 읽고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7.1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광주항쟁으로 읽는 현대한국을 읽고 쓴 감상문 입니다. 광주항쟁의 의미와 분석등 다양한 측면에서 광주항쟁의 의미를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좋은 자료로 활용하세요.

목차

없음

본문내용

1980년 5월. 한국 남서부에 있는 광주라는 도시에서 첨단 무기를 지닌 최정예 군인과 시민들 사이에 일대의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18일부터 열흘 동안 벌어졌던 항쟁의 막은 27일로 내려지지만 민간인 189명(계엄 사령부 발표에 의한 것)이 희생되는 고통을 수반하게 되었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광주 항쟁을 좁은 시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의 객관적이고 폭넓은 관점으로 다시 조명하고 싶다. 건국 50년간 전개됐던 역사에 있어서 광주 항쟁은 지금을 사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와 교훈을 주는지 이제부터 알아보기로 하겠다. 크게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로 현대 한국사의 중심에 있는 광주 항쟁을 지역감정 문제와 군정시대, 문민정치시대의 상황과 결부시켜 알아보기로 하겠다. 과거로부터 전라도 차별이라는 의미에서의 지역 감정은 이미 고려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통일신라로부터 고려 왕조에 걸친 시대, 전라도를 본거지로 하는 백제는 패망 후 유민들에 의해 부흥운동을 벌여왔고 그것이 바로 피해의식과 결부되어 유민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아왔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이러한 이미지는 불식되지 않았다. 또한 조선 말기의 재정난에 따른 “삼정”의 폐해와 일제의 토지조사업이 조선의 곡창지대인 전라도의 땅을 빼앗아 갔고 이러한 일들로 인해서 많은 이들이 유민화 되고 부랑자로 흘러들어 갔음을 암시하고 있다.
갑오농민항쟁, 3.1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등 전라도를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이것은 “배역”의 분위기를 증폭시키는 여건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군사정권과 문민정권의 갈등에 비추어 볼 때 전라도는 계속적으로 뒤쳐질 수밖에 없었다. 1965년 박 정권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한일조약에 의거하여 우리의 현대사는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국민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체현하고 있는 기독교인이자 민주주의 정치가인 김대중씨”로 상징되는 반체제는 문민정치로 하는 선입관으로 말미암아 지역 갈등은 더욱 더 심화되어 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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