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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 경주답사기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5.07.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7페이지 | 가격 2,300원

소개글

2005학년도 1학기 경주 답사기 입니다.
논문형식입니다.

목차

▶답사일정 2

▶지역개관 3

▶고분유적 6

▶불교유적 22

▶답사후기 73

▶회 의 록

▶찾아보기

본문내용

김 수 영, 김 진 욱
면적 1,323.75㎢, 인구 29만480명(2000)이다. 북동쪽으로 포항시, 서쪽으로 영천시․청도군, 남쪽으로 울산광역시 울주군, 동쪽으로 동해에 면한다. 2000년 현재 행정구역은 4읍 8면 13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시청은 경주시 노동동과 동천동에 있다.

■ 지 역 환 경
태백산맥의 지맥인 동대산맥(東大山脈)과 주사산맥(朱砂山脈)이 남북으로 주행하여 동서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형산강구조곡(兄山江構造谷)과 영천~경주간 구조곡이 교차하는 지점에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침식분지가 형성되어 그 곳에 경주시가지가 발달하였다. 명활산(明活山)․금오산(金鰲山)․옥녀봉(玉女峰)․선도산(仙桃山)․금강산(金剛山) 등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는 자연요새를 이루고 있다. 시가지의 서쪽에는 형산강의 상류인 인천(麟川)이 남류하면서 서쪽 경계를 이루는 서천, 중심부를 관통하는 북천, 반월성(半月城)을 싸고도는 남천과 합류하여 형산강 본류가 형성되어 영일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 역 사
천년의 역사를 가진 신라의 수도로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대의 유물․유적을 보유하고 있는 역사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구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으나 청동기시대의 것은 대동강유역 다음으로 많다. 민무늬 토기․마제석검․돌화살촉․반월형돌칼․고인돌․석관묘․토광묘 및 각종 청동기류가 조양동․평동을 비롯한 경주시 일원에 출토되고 있어 신라의 전신 사로국의 발전과정을 잘 보여준다. 남천․북천․서천유역과 산기슭에 자리잡은 6촌에 6개 씨족이 살다가 진한소국의 정복과 함께 왕경(王京)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에는 금성․월성․계림 등의 지역을 중심으로 궁궐․관청․시장․사원 등이 들어서면서 도시로서 한층 발전하였다. 전성시대의 왕경에는 17만 8936호 1360방 55리 및 35금입택(金入宅)이 있던 정치의 중심지일 뿐 아니라 경제․종교․문화적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신라 말기에는 견훤(甄萱)의 침입으로 크게 파괴된바 있다.
935년(태조 18) 신라 56대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함에 따라 처음으로 경주라 불리게 되었다. 940년(태조 23)에는 영남지방의 행정 관청인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가 설치되었으며, 987년(성종 6)에는 이름을 동경(東京)으로 바꾸고, 유수사(留守使)를 두었으며, 1012년(현종 3)에 다시 경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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