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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김육의 생애, 사상, 업적, 평가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7.0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김육의 생애, 사상, 업적, 평가

목차

1. 인물의 생애 및 인적사항

2. 시대배경
(1) 16세기~17세기 상황
(2) 북벌론의 등장

3. 사상
(1) 대동법의 시행 및 확산
(2) 새로운 역법 도입- 시헌력
(3) 활자제조
(4) 용전론(用錢論)과 용차론(用車論)

4. 역사적 평가

본문내용

그도 유생 시절에는 정치적인 사건에 뛰어들어 당파적 성향을 드러내고 명분과 의리에 집착했다. 그러나 가평의 잠곡에 머문 뒤로는 그런 일을 스스로 벌이지도 않았고, 남에 의해 그런 일에 휘말린 적도 거의 없었다. 그는 주로 현실적인 문제, 백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에만 관심을 두었다. 가평에서 빈한하게 10년을 지내는 동안 스스로 농사를 지어 먹고 살아야 했던 그는, 백성들의 괴로움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깨달았다. 쓸데없이 관념적인 말과 논리를 좋아하지 않고 실용적인 것을 중시하는 사고방식은 아마도 이때부터 형성된 듯하다. 그가 청년기에 순탄한 길을 걸었더라면 그는 실용적인 사고방식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백성들이 살아가면서 겪는 불편함과 괴로움을 직접 겪으면서 그 시대의 시급한 일이 무엇인가를 몸으로 체험했다. 그러므로 그의 애민사상은 단순히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체험에서 우러난 것이다. 그는 관계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안민책에 매우 집요했으며, 그는 결국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그는 대책 없는 안일한 공리공론을 혐오했다. 학문을 말하는 인사들이 뜻을 정성스럽게 하고 마음을 바로잡으면 세상일이 저절로 해결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원론보다는 각론을 좋아했고, 논리적인 것보다는 실질적인 것을 좋아했으며, 관념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것을 좋아했다. 김육은 매우 고집에 셌다고 한다. 효종도 김육의 고집은 죽어야 고칠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는 누구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밀어붙이는 과단성이 있었다. 때로는 그 고집과 과단성이 도를 넘어 다른 인물들과 불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고집은 그 당시의 조선을 위해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그의 고집이 없었더라면 대동법은 훨씬 늦게 정착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동법 실시에 앞서야 할 여러 가지 동적인 현실면, 즉 대동법 실시에만 너무 조급하여 엄청난 전토측량과 관기의 확립 등이 미처 수행되지 못하여 일시적으로는 대동법이 성공하였다 해도 결국에는 대동미가 대동법 실시 이전의 농민부담에 첨가되었다고 할 정도로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결과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데는 김육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던 여러 가지 종적, 횡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나, 김육이 지나치게 제도면의 혁신에만 몰두한 결과 이에 관련되는 여러 가지 전통적이고도 현실적인 면을 소홀히 생각하였다는 점은 숨길 수 없는 과오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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