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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동학혁명(역사의 주체는 민중이다)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7.0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4페이지 | 가격 1,800원

소개글

한국의 역사와 문화라는 교양과목을 들으면서 작성한 레포트입니다..책을 한 10권정도와 논문 그리고 웹 문서로 작성하여서 내용은 많습니다. 기왕이면 이 자료와 더불어 자신의 의견을 더 첨가하시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2000원이면 정말 싼 금액입니다...ㅋㅋㅋ

목차

Ⅰ 들어가기에 앞서서
⇒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통과와 “동학농민혁명”이란 용어의 문제

Ⅱ 서 론

Ⅲ 본 론

ⅰ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배경

- 19세기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의 정세
- 사회․경제적 배경

ⅱ동학농민혁명에 있어서 동학의 영향

ⅲ변혁주체로서의 민중, 그 이름은 농민, 그들이 꿈꾼 세상은?

ⅳ동학농민혁명의 성과

ⅴ동학농민혁명의 좌절과 그 영향

- 동학농민혁명의 실패요인
- 동학농민혁명의 영향

ⅵ동학농민혁명의 의의

- 역사적 의의와 함께 알아 본 현대적 의의
- 동아시아 국제 정세에 끼친 영향

Ⅳ 결 론
⇒ 동학농민혁명 정신의 현대적 계승에 관해서...

Ⅴ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지난 2004년 2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일명 동학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110년 만의 이 늦은 경사나마 일제 때 친일파규명·위안부 보호, 한국전쟁 때 민간인학살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보류됨에 따라 어정쩡한 기쁨으로 반감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동학법은 유족에겐 고통의 밑바닥에서 만난 재생의 통로이자, 역사의 진보를 확인하는 미세한 징후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1894년의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한 평가 작업이 110년이라는 세월을 거치면서 똑같은 모습을 보여 온 것은 아니었다. 1894년 농민봉기를 현장에서 지켜봤던 유학자 황현은 이를 ‘비란’, ‘역모’라 하였고, 농민군에 대해서는 ‘동비’, ‘적’, ‘사란작적자’라고 칭하였다. 이것은 황현이라는 유학자 혼자의 생각이 아니고 1894년 사건을 바라보는 당시의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물론 대다수 농민들은 농민봉기를 정당한 행위로 인식했지만 그들의 생각은 제대로 표출될 수 없었다. 그로부터 11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같은 사건을 ‘농민전쟁’, ‘농민혁명’이라 부르고 “우리 역사상 최고 최대의 반봉건․반외세 항쟁”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한 역사적 사건에 주어질 수 있는 최상의 찬사를 보내고 있다.
길지 않은 역사의 시간이 흐른데 비해 한 사건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이처럼 변화했다. 농민혁명에 대한 이런 인식의 변화는 어느 한 순간에 한꺼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변화는 여러 방향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 다양한 모습으로 진행되어 왔다. 진행되는 사회변화와 궤적을 같이 하며 이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조금씩 바뀌어 왔고, 그 결과 ‘동비의 란’이 ‘농민혁명’으로, 역적이 혁명가로, 지역사에서 전체사로, 야상에서 정사로 바뀌었다.

참고 자료

「 참 고 문 헌 」

한국역사연구회, <1894년 농민전쟁연구 1권~5권>, 1991年
이 상 식 外, <전남 동학 농민 혁명사>, 1996年
동학 농민 혁명 기념 사업회 편, <동학농민혁명의 동 아시아적 의미>, 2002年
동학 농민 혁명 기념 사업회 편, <동학농민혁명과 사회변동>, 1993年
김 은 정 外, <동학농민혁명 100년>, 1995年
노 태 구, <동학혁명의 연구>, 1981年
김 중 규 外, <민중의 숨결>, 1994年
한국 정치 외교사학회 편, <갑오동학농민혁명의 쟁점>, 1994年
신 순 철 外, <(실록)동학농민혁명사>, 1998年
<동학농민운동의 발자취를 따라서>


「 참고논문 」
김 경 재, <동학농민혁명 과정에서 종교적 영향>


「 관련 Web Site 」
동학 농민 혁명 기념재단
- http://cein21.net/donghak

동학농민혁명연구회민중횃불
- http://mahan.wonkwang.ac.kr/club/donghak/dong.htm

한겨레신문 - 2004년 2월 24일자 기사
→ 「동학농민군의 위대한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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