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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사] 한국현대정치사(국가폭력을중심으로)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5.06.3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800원

소개글

한국의 현대정치사레포트입니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대통령들이 자행했던 국가폭력을 중심으로 상세히 조사한 레포트 입니다
정말열심히 만들었습니다

목차

서론 : 장미는 '절대로'쓰레기통에서 피지 않는다.
[5.18].
1장 이승만 정권기의 국가 폭력
2장 박정희 정권기의 국가 폭력
3장 전두환 정권기의 국가 폭력
맺음말-역설적인 희극의 막을 내리자

본문내용

이승만 정권기의 국가 폭력

#개관
1945년, 연합군의 승리로 식민 지배를 청산한 한국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미국과 소련, 그 거대한 양대 세력의 아귀다툼으로 또 다른 혼란에 빠지게 되었고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각각 진주한 미소 양자의 이해의 차이로 마침내 한국은 남북 분단을 겪게 되었다.
북한에서 소련의 지지를 밭아 김일성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확고히 굳히고 있을 때, 남한에서도 역시 미 군정의 지지를 바탕으로 민족주의 세력을 누르고 이승만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1950년에 발발한 비극적인 한국 전쟁을 거친 이승만 정권은 독재의 이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자신의 독재에 저항하는 진보적 인사들을 반공과 냉전의 논리로 제거하며 정권 유지에 심혈을 기울였으나, 1960년 3.15 부정선거와 시위대에 대한 경찰의 진압을 촉매로 발발한 4.19 혁명에 의해 모래성처럼 무너지게 된다.
이승만 정권기를 다룬 제 1장에서는 한국 전쟁기 벌어졌던 국민 보도 연맹원 학살 사건과 조봉암의 법살을 조명해 보기로 한다. 위 두 사건은 이승만 정권기에 벌어졌던 대표적인 세 가지의 국가폭력 - 민간인 학살 / 매카시즘을 악용한, 조봉암으로 대표되는 반대세력의 부당한 탄압 / 3.15 부정선거를 모태로 한 4.19 혁명 - 중 4.19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낮으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이 무덤의 사연을 후세에 전해주구려
-국민 보도 연맹원 학살 사건

해방 이후, 미소 양대 세력간의 이념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 김구, 여운형 등 민족주의자들은 탈 이데올로기적 정치 세력을 구축, 이념차로 인한 남북 분단을 막기 위해 노력했으나 끝내 실패하고, 그 결과는 분단된 조국이었다. 그 분단된 조국이 서로를 증오하는 쌍둥이처럼 상대방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사실은 매우 잘 알려져 있다.
국민 보도 연맹(이하 보련)은 그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1949년 탄생했다. 그리고 일년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보련에 가입했던 사람들은 참혹하게 학살당하고 만다.

보련의 설립 취지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서 이승만 정권은 탄압 일변도의 강경책이 오히려 좌익 세력을 지하로 은닉하게 만드는 한계성을 드러내자 선전, 선무를 통한 포섭공작을 펴기 시작했다. 그 포섭공작의 산물이 바로 보련이다. '좌익 세력에게 전향할 기회를 주겠다.' 는 명분을 가진 보련이었고, 실제로도 남로당 등으로 대표되는 좌익 단체의 인사들을 포섭하는 데에도 소기의 효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보련의 실상은 단지 좌익세력을 포섭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민족주의자들을 비롯한, 즉 이승만 친미 독재에 반하는 인물들도 자연스럽게 좌익 세력으로 몰아 보련에 강제로 가입시켜 그들의 활동을 통제하려는 목적 또한 지니고 있었다. 결국 보련은 1년 전, 즉 1948년 공포된 국가 보안법과 함께 반체제적 인사들을 통제, 탄압하고 이승만 정권을 비호하는 충실한 비호자였던 것이다. 한국 전쟁기 보도 연맹원 학살의 비극은 이미 보<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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