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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점수C

[한국고대사] 동북공정(고구려사와 발해사를 포함하여서)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6.2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정말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에이뿔^^)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제가 타과생인데 국사학과 수업을 듣기 좋아해서 열심히 썼던것입니다 좋은성과 있으시길 바랍니다.

목차

Ⅰ. 머 리 말

Ⅱ. ‘東北工程’의 추진배경

Ⅲ. ‘東北工程’의 추진과제와 내용

Ⅳ. 현재 중국의 고구려사 인식(발해사를 포함하여)

Ⅳ. 맺 음 말

본문내용

이에 중국은 1983년 동구권이 변화하고, 1991년 소비에트가 해체되면서 국경지방의 소수민족의 민족문제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이후 동북지방에 더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특히 한국인들이 이 지역에 와서 고구려와 발해의 유적을 답사하면서 한국역사와 관련된 발연을 할 때 매우 긴장하였으며, 한국인들의 출입을 감시하고 통제하기도 하였다. 한편 중국당국은 조선족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몰려가는 것을 보며 조선족들의 정체성에 대해 불안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더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탈북자들이 대거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동북지방의 정체성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게 된 것이다. 또한 역사적으로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한반도와의 변경 문제가 남아있다. 이른바 20세기 초 일본과의 間島協約으로 대충 처리된 한반도와의 국경분쟁은 언젠가는 다시 불거질 수 있으며 쉽게 진화될 수 없는 분쟁의 속성을 지니고 있고, 중장기적 측면의 예상이지만 남북통일 후 초래될 한반도의 급격한 정세변화를 대비한 정치적 역사적 정지작업의 필요성 때문이다.따라서 이때부터 동북지방의 연구기관들을 통하여 동북지방의 역사와 지리 및 민족문제와 관련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하였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고구려를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으로 보고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보려는 연구 결과들이 활발하게 발표되었던 것이다. 그러다 2001년 한국 국회에서 재중동포의 법적 지위에 대한 특별법이 상정되자 중국 당국은 조선족 문제와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된 문제등에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을 세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2001년 북한이 고구려의 고분군을 UNESCO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을 신청하자 국가적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기획하고 추진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만약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게 되면 고구려사를 중국의 역사로 주장하는 명분이 사라질 가능성이 많아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는 것을 지연시키는 등 사실상 방해공작을 펼쳤고, 2003년 봄 오히려 集安(집안)시 주변의 고구려 고분군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줄 것을 신청했다. 「한계래」, 2004, 7, 20
북한이 신청한 고분군의 실사를 중국학자가 맡아 관리상의 문제, 접근성의 문제, 주변 지역 유적과의 비교불충분 등을 이유로 들어 보완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참고 자료

최광식, 2004,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살림
나영주, 민족연구원, 특집: “동북공정”의 해부 : 제 1부 동북공정의 전개
손진기, 민족연구원, 특집: “동북공정”의 해부 : 제 2부 동북공정의 논리,
우실하, 2004, 동북공정의 선행 작업들과 중국의 국가 전략, 울력
김한규, 2004, 요동사, 문학과 지성사
송기호, 1999, 발해를 다시본다, 주류성
노태돈, 2003, 한국사 연구회, 발해연구 현황과 과제 ; 발해국의 주민구성에 대한 연구현황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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