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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회 감상] 잊혀진 질곡의 유민사 展

저작시기 2003.05 |등록일 2005.06.2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신순남은 누구인가.
(2) 신순남 작품의 역사적 배경
流民들의 한 맺힌 삶과 운명에 대해 말하다.
- 신순남의 <애도>와 <장미 빛 눈>에 대한 고찰
(3) 신순남의 <애도>
(4) 신순남의 <장미 빛 눈>

Ⅲ. 결론

본문내용

‘나는 검은 룡(龍)’이라고 자칭하는 신순남. 우리나라에서 용은 부와 권력을 상징하지만 서양에선 잔혹하고 비정상적인 악의 화신으로 묘사된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는 이유는 자신이 고려인 유민(流民)에다가 사회주의 체제에서 민족주의 예술을 고집하다보니 검은 룡(龍)으로 밖에 살 수 없다고 고백한다. 또한 자신이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한 ‘나쁜 사람’이며, 사랑하는 아내에게 자신은 더더욱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표상은 타국을 헤매며 겪어야 했던 유민으로서의 고독과 한이 맺혀있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닐까. 그가 거작들을 그리게 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였다. 신순남은 1937년, 당시 아홉 살의 나이에, 떠나야 하는 이유도 행선지도 모른 채 화물열차에 실려갔다. 이는 혹독한 왜정 치하를 피해 연해주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라는 스탈린의 명령 1930년대 후반부에 들면서 유럽에서는 독일과 소련이 전쟁준비를 강화하고 극동지역에서는 소련과 일본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었다. 일본과 소련은 상호 첩자를 파견하여 상대방을 탐색하였고 이에 일본은 연해주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이용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연해주의 한인이 일본의 첩자에게 이용당한다는 이유 이외에 한인들의 항일운동이 일본에게 시비의 구실이 될 것이라고도 생각한 스탈린은 한인들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로 이동 시킬 것을 명령한다.
이었다. 난데없는 이주 명령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고려인 들은 미처 짐을 챙길 틈도 없이 좁디 좁은 군용 화물열차에 강제로 실려 황량한 중앙아시아로 내몰렸다. 이주 기간 내내 고려인 들은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감수해야 했고, 일주일이면 갈 거리를 무려 27일이나 걸려 끌려가는 동안 고려인들은 많이 죽게 된다. 굶어서, 얼어서, 풍토병에 걸려서 죽는데 장례식은 언감생심이었다.

참고 자료

『러시아 沿海州의 韓人社會』이광규 저, 集文堂
『러시아 美術史』A.I. 조토프, 이건수 옮김, 동문전 문예신서
『Wassily Kandinsky-20세기 미술의 발견』예경
『바실리 칸딘스키 예술론-예술과 느낌』막스빌 엮음, 조정옥 옮김, 서광사
‘조선일보’ <특집 신니콜라이 유민사 벽화> 1997년 1월 ~3월, 정중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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