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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학]서울에 있는 천주교 성지 답사기

저작시기 2005.04 |등록일 2005.06.2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8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서울의 문화재탐방 보고서 쓰는 분, 국사과목 수강학생에게 도움이 될 듯 합니다.

목차

-머릿말
-명동 성당
-약현 성당
-서소문 순교지
-새남터 순교성지
-절두산 순교성지

본문내용

2) 약현 성당
- 한국교회 최초의 서양식 벽돌 건축물
약현(藥峴)은 원래 만리동에서 서울역으로 넘어오는 고개로, 옛날 이곳에 약초밭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최대 순교지인 서소문 순교성지가 발아래 내려다뵈는 약현 언덕에 본당이 설정된 해는 1891년. 당시 서울에 하나뿐인 종현 본당 만으로는 늘어나는 교세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종현 본당 주임 두세(Doucet) 신부가 조선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본당 신설을 요청함에 따른 것이다. 당시 서울에서는 두번째 본당이었으며, 전국적으로는 열번째였다. 초대 주임 두세 신부 감독 아래 종현 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를 맡아 그해 공사에 들어간 약현 성당은 이듬해 1892년 12월 완공되었는데, 프랑스에 주문한 종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축복식은 해를 넘긴 1893년 4월 뮈텔 주교 집전으로 거행됐다. 뮈텔 주교는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보낸 서한에서 "이제 서울 문밖 중심에 성당이 우뚝 솟았다. 그것은 아담하며 또한 성당다운 성당으로서는 한국 최초이고 유일하다"며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벽돌을 쓴 성당은 길이 32미터, 폭 12미터, 종탑 높이 22미터의 120평 규모였다. 이후 1905년 종탑 꼭대기에 첨탑을 올렸고, 1921년에는 성당 내부 칸막이를 철거하는 한편 벽돌기둥을 돌기둥으로 교체하는 내부 개조공사를 벌였다. 1974년부터 2년여에 걸쳐 대대적 해체 복원 공사를 실시한 중림동 성당(약현 성당)은 77년 국가 문화재(사적 제252호)로 지정되었다. 중림동 성당은 1998년 2월 술에 취한 한 행려자의 방화로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벽돌 구조물과 앙상한 잔해만 남긴 중림동 성당은 1년 6개월여에 걸친 복원 공사 끝에 2000년 9월 다시 한번 축복식을 가졌다. 복원 공사는 성당 건립 당시 원형을 그대로 따른다는 원칙으로 74년 대대적 보수 당시 변형된 부분을 원상태로 복구하는 데에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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