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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말 전제개혁 논의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6.2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고려말 전제개혁에 대한 글입니다.

목차

1. 머리말
2. 고려후기 토지제도의 모순
(1) 농장의 발달
(2) 농장의 폐단
3. 토지제도의 재정비
(1) 녹과전
(2) 사급전의 지급과 그외 토지제도
(3) 전민변정사업의 추진과 그 한계
4. 전제개혁 논의
(1) 개선론
(2) 개혁론
(3) 과전법의 성립
5. 과전법의 내용과 의의
6.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고려 왕조는 우왕 14년(1388)에 이성계 일파의 위화도 회군으로부터 시작된 군사반란으로 멸망하게 된다. 정권을 잡은 신흥사대부들이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사전개혁이었는데 이것은 당시 토지제도의 폐단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잘 말해주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고려후기부터 심각하게 진행되어온 농장의 확대로 인해 고려 말 사회는 극심한 폐단에 빠져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을 한 신흥사대부들이 가장 먼저 전제개혁을 시도한 것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고려 후기 농장의 발달로 인한 토지제도의 폐단과 고려 말 신흥사대부들의 전제개혁에 대한 논의를 사료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2. 고려후기 토지제도의 모순
(1) 농장의 발달
고려 후기에 권문세족의 경제적 기반이 된 것은 그들이 소유한 막대한 농장이었다. 이들 권문세족은 정치적 실권을 차지하였을 뿐 아니라 농장을 확대하여 지배세력으로서의 물질적 토대로 삼았다.
고려의 전시과체제는 이미 귀족정치기인 12세기 초엽부터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이자겸을 비롯한 문벌귀족들이 토지를 겸병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무신정권이 수립됨으로써 더욱 촉진되었는데, 이 때 집권 무신들은 남의 토지를 탈취하고, 대토지를 겸병하여 전시과 체제는 유명무실하게 되고 말았다.
대토지 겸병의 추세는 무신정권이 몰락하고 몽고간섭기로 접어들면서 더 본격화되어 고려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고려 후기의 지배세력은 권문세족들이 다투어 토지를 겸병하고 인구를 집중시켰기 때문이었다. 여기에는 왕실과 사원도 포함되어 역시 대토지소유자가 되었다.
이들 권문세족의 토지확대는 불법적 방법에 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권력에 의한 불법적인 탈점, 즉 약탈과 강점에 의한 경우가 많았다. 또한 권문세족은 사패(賜牌)를 받은 사전(賜田)에 의하여 토지를 확대하였다. 이 사패는 본래 토지, 노비의 합법적인 소유를 인정하는 국가 발행의 공문서이지만 이른바 ‘모수사패(冒受賜牌)’라 하여 부당하게 사패를 받은 경우가 많았고, 심지어는 사패를 받지 않고 서도 받은 것처럼 사칭하여 토지를 겸병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이 밖에 그들의 자본을 이용한 개간으로 토지를 집적하기도 하였고, 또 가혹한 수탈에 견딜 수 없는 농민이 권문세족에 투탁하여 전호가 됨으로써 인구의 집중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참고 자료

▲ 참고 문헌 ▲
․ 강만길외, <한국사 5>, 한길사, 1995
․ 변태섭, <한국사통론>, 삼영사, 2004
․ 박경안, <고려후기 토지제도연구>, 혜안, 1996
․ 이경식, <조선전기 토지제도연구>, 일조각, 1986
․ 사료참고, <고려사절요> 권33,
정도전, <삼봉집> <조선경국전> 賦典, 經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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