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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사 ] 신정과 신해 혁명 고찰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6.20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1. 신해혁명의 과제
2. 혁명운동의 출발
- 흥중회(興中會)와 손문(孫文)
(1) 흥중회(興中會) 결성과 광주기의(光州起義)
(2) 민생주의(民生主義)의 원형· 변법소(變法泝)와의 관계
(3) 필리핀 독립운동· 양광(兩廣) 독립계획· 혜주기의(惠州起義)
3. 중국동맹회(中國同盟會) 성립과 삼민주의
- 혁명제파(革命諸派)의 ‘연합’
(1) 혁명의 풍조
(2) 화흥회(華興會)·광복회(光復會)
(3) 중국동맹회(中國同盟會)의 성립
(4) 삼민주의(三民主義)
(5) 개혁파의 논쟁
(6) 무장봉기(武裝蜂起)
4. 청(淸)왕조의 대응
(1)서태후(西太后)의 신정(新政)
(2) 입헌제 준비
(3) 철도국유화 문제
5. 무창(武昌)봉기와 중화민국(中華民國)의 성립
(1) 장강(長江)유역의 동향
(2) 무창봉기(武昌蜂起)
(3) 중화민국(中華民國)의 성립
(4) 타협에 의한 수습

본문내용

1. 신해혁명의 과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손문 등에 의해 추진된 혁명운동은 두 가지의 큰 과제를 떠맡고 있다. 하나는 국내모순의 해결로서 그 대상은 왕조체제와 전제정치, 만주지배체제, 봉건적 지배로 이 세 가지는 상호간에 그 존속을 보증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일체의 관계에 있다. 다른 하나는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저항과 민족적 자립, 독립을 달성하는 것인데 19세기 말에 이르러 열강의 중국 침략이 한층 더 강화되어 중국의 분할이 임박한 상황에서, 이것은 중국의 재생을 바라는 사람이 피해갈 수 없는 과제였다. 그동안 중국 속에는 변법파와 혁명파가 구국의식을 가지고 그 실천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는데 변법파는 현존체제에서 점진적 개혁 추진을 도모하고 더욱이 그 추진력을 관료 지식인이라는 특권계층에 기대했던 것에 반해서 혁명파는 현체제의 파괴를 전제로 하여 새로운 사회의 건설을 구상하고 그 추진력을 광범한 국민에게 기대했던 데에 있다.
적어도 손문 및 그 지지자들에게는 그러했으며, 현실의 행동이 그것에 따르지 않았다고 해도 주관적으로는 그 혁명은 언제나 국민을 기반으로 구상되고 있었다. 따라서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혁명’이 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 상황 속에서는 민족적 위기의식은 가지고 있었으나 국내모순 타파와 제국주의 저항이라는 두 가지 목표에 동시에 대응하기란 벅찬 일이었다. 결국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대결과정에서 국내모순 해결에 우선 목표가 주어진다.
손문이 내건 삼민주의(三民主義)는 이상과 같은 상황 하에서 중국의 재생을 도모하는 혁명이론이었다. 신해혁명은 이상과 같은 과제를 어디까지 해결하고 어디까지 미해결인 채 남겨 두었는지 그 점이 이 ‘혁명’평가에 관련된 문제였다.

참고 자료

「중국근대사」, 掘川哲男, 삼지원, 1994
「中國近現代史」, 小島晋治·丸山松幸, 1998, 지식산업사
「근대중국: 개혁과 혁명」, 2004, 대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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