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평가점수A

유관순과 잔다르크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5.06.19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5페이지 | 가격 1,000원

본문내용

잔 다르크와 유관순은 둘 다 소녀의 몸으로 구국에 나서 민족의 수호자로 승화하는 등 닮은
점이 많은 것같다. 두 사람 모두 17살에 조국의 위난을 보고 떨쳐 일어났다는 점부터 같다.
1412년 프랑스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잔 다르크는 17살 때인 1429년 영국과의 ‘백년전쟁’에서 패색이 짙던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전장에 나선다. 1902년 역시 농부의 딸로 태어난 유관순도 17살 때인 1919년 3·1운동에 온몸을 던져 일본 제국주의에 맞섰다.
두 사람은 또 종교적 열정과 정치적 신념을 결합해 어떤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 불굴의 인간상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잔 다르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천사장 미카엘의 계시를 받고 전장에 뛰어들었으며, 유관순도 독실한 감리교인으로서 온갖 고비마다 투철한 신앙심으로 헤쳐 나갔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은 또 직관에서 비롯되는 탁월한 정치적 통찰력을 발휘한다.
잔 다르크는 (1) 프랑스가 하나님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으므로 반드시 승리한다
(2) 하나님으로부터 정통성을 부여받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역대 프랑스 왕의 대관식을 열던랭스를 점령해 먼저 대관식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관순은 자신이 왜 그처럼 극한적 비타협투쟁을 벌이는지 이렇게 설명했다. “2천만 동포의 10분의 1만이라도 순국할 것을 결심한다면 독립은 저절로 될 것입니다.”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적국의 탄압을 직접 경험하면서 성장했다. 잔 다르크의 고향 동레미라퓌셀은 주민들이 프랑스의 샤를 황태자를 지원한다는 이유로 영국군과 부르고뉴군으로부터 여러 번 습격·약탈·살인·방화·납치의 피해를 겪었다. 유관순의 경우도 가족들이 세우고 다니던 매봉교회가 의병들을 돕는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여러 번 불태워졌다. 두 사람 다 적국에 붙잡혀 타협을 거절한 채 순국한 점도 같다.
유관순은 비록 잔 다르크처럼 직접 전쟁터에 나가 결정적인 전과를 올리지는 못했지만, 이런 유사성 때문에 프랑스쪽의 인정을 받아 파리 잔 다르크 기념관에 영정이 봉안되기에 이른다. 일본의 일부 교과서도 그를 사진과 함께 ‘조선의 잔 다르크’로 묘사하고 있다.
이번 가상 인터뷰를 통해서 유관순과 잔 다르크에 대해 많이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우리가 직접 역사적 인물이 되어 생각을 하고 말해보면서 재미있는 토론 시간이 되었던 것 같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