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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 학생인권문제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5.06.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1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학생인권에 대한 조명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두발자율화
3. 초등학교 일기검사
4. cctv설치
5. 스쿨폴리스
6. 나오며

본문내용

교육의 수요자이지만 가장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학생의 모습이 바뀌었다. 얼마전 광화문에서 고등학생의 촛불시위는 그러한 모임을 자발적으로 가질 수 있었다는 점에 그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정해진 교육정책 부당함과 자신들의 인권을 내세우며 그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크다.
국가와 사회, 작게는 학교라는 구조 속에서 자신의 억압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테 체제에 적응해버린 이전 세대와 달리 불합리한 구조를 인식하고 수정을 요구하였다. 이것은 인권의 사각지대였던 학교를 재조명하게 하였고 학생의 권리를 인식하게 하는 계기였던 것 이다.
이것은 또 하나의 소외계층의 발견이며 이는 우리사회가 풀어야할 또 하나의 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Ⅱ. 두발자유화논란
ⅰ.두발규제의 역사
우리나라의 강제적인 두발 규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189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895년 12월 일제는 위생에 좋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단발령을 내렸다. 고종과 세자는 물론 내각의 신하들은 모범을 보인다며 먼저 상투를 잘랐다. 이때 최익현의 "내 목은 자를 수 있으나 내 머리는 자를 수 없다"는 탄식을 시작으로 전국의 유생과 지방민들은 의병을 조직했다. 단발령은 명성황후 시해와 더불어 의병봉기의 이유였다. 게다가 단발령을 주도한 총리대신 김홍집은 광화문 거리에서 돌에 맞아 숨졌다. 단발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직접 설득하러 나섰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최근 일부 교사들이 학생 머리에 강제로 '고속도로'를 내는 행위의 기원도 이때다. 단발령이 민중들에게 먹혀들지 않자 조정 관리들과 순검들이 가위나 칼을 들고 직접 거리와 장터로 나섰다. 이들은 단발을 하지 않은 사람들의 상투를 강제로 잘랐다. 그야말로 '상투의 수난시대'였다. 학교에서의 두발 제한은 일본에 의하여 근대교육이 들어오면서 시행되었다. 당시의 두발규제의 목적은 조선의 청소년들이 다니는 학교를 예비군인의 군대화시키는 것이었다. 이렇게 일본 군국주의 유지를 위하여 또는 조선인 청소년들을 자기네 나라 신민화 시키기 위해 두발규제가 실시되었다. 해방 이후 사람들은 개성에 따라 자유로운 머리스타일을 구사했다. 그러다 다시 머리에 각이 잡히기 시작한 때가 1970년대다. 청바지와 통기타로 요약되는 이 시대에 장발은 큰 유행이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장발을 퇴폐행위로 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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