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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중국, 일본 문화]사대부, 선비, 사무라이의 비교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6.17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1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중국의 사대부, 한국의 선비, 일본의 사무라이를 연구 비교해 본다.

목차

1. 사대부의 기원과 형성과정

2. 송대 사대부의 특징

3. 사대부의 활동

4. 선비의 기원

5. 선비의식의 역사적 고찰

6. 선비정신

7. 사무라이(무사)의 기원

8. 사무라이 정신
가. 義(도는 義理)
나. 勇
다. 仁
라. 禮(또는 禮儀)
마. 誠
바. 名譽

9. 사대부, 선비, 사무라이 비교 분석

본문내용

- '사대부(士大夫)라는 말은 송대 훨씬 이전부터 쓰여 온 말로 보인다. 전국 시대에 들어와 주대의 신분질서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지배체제로 등장한 사인층이 자신들의 성격에 맞는 새로운 명칭으로 사대부라는 명칭을 썼으며, 이는 당말, 오대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이어져 성격상의 큰 변화 없이 정치적 지배계급으로서의 문. 무의 모든 관료집단 및 그에 준하는 자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관되게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8세기를 기점으로 송이 건국되는 10세기 후반까지 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부분에 걸쳐 혁명적이라 할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는 이른바 '당송변혁기'를 맞이하여 당대부터 그 성격이 크게 변화하기 시작한다.
우선, 당대에 이르면 수대에서 이어받아 시험으로써 관료를 선발하는 과거제도가 시행되어 정기적인 자천, 시험을 실시하였다. 물론 성시라고 할 수 있는 두 번째 시험이 예부의 관할하에 있는 것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진시과 이외에 수재과 명경과 등이 중시되던 점 등, 초기에는 송대와 많이 다른 모습을 보였으나 이는 당 후반기에 가면 송대로 이어지는 과거제도의 모습을 보다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해마다 과거 합격자수가 증가해갔으며 그에 대한 관료로서의 우대, 당 후반기에 나타나기 시작한 의관호(衣冠戶)이 가지는 경제적 특권을 진사과 합격자 모두에게까지 주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과거제도 및 그 합격자는 국가 권력을 매개로 하여 사회적 중요성을 더해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당대에는 송대와는 달리 아직 과거의 합격여부가 응시자의 노출된 사회적 지위나 신분에 의해서 좌우되기 쉬운 결정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나 우선 과거제 자체가 능력에 따른 개방성을 기본적인 성격으로 한다는 점을 살필 때 광범위한 사회계층으로부터 관료를 뽑을 수 있는 가능성은 인정되어야 하며 그 사회적 영향력도 제도적 정비와 정착으로 점차 커가는 경향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 후반기에 뚜렷해지는 과거응시자의 현격한 증가는 통일된 국가권력이 지식과 교양을 지닌 이들을 관료로 선발하고 이들에게 특권을 줌으로써 중앙권력으로 흡수하는 과정과 능력에 따른 개방성과 송대 지식인들처럼 스스로 지식과 교양을 습득하면서 자기 확대로 나아가는 면을 함께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1. http://kin.naver.com/open100/entry.php?eid=lc53O%2FnBHvba8sf2oHWTMBeke6KS2fxL
2. <선비와 사무라이>, 박승무, 2003, 아침
3. <선비와 지식인>, 고병익, 1985, 문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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