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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미술의 이해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6.16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후회 없는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공식적인 낙성식이 거행된 1541년 10월 31일, 이 작품은 전 로마 시민의 경악과 찬탄의 표적이 되었다. 작품 속의 인물은 처음에는 모두 나체였기 때문이다. 교회의 압력을 견디다 못한 바오로 4세는 ‘그림을 바로 잡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시종장의 전언에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쏘아붙였다. “교황 성하께 먼저 세상을 바로 잡으시라고 전하게. 그러면 그까짓 그림 따위야 저절로 바로 잡힐 테니.” 그러나 뒤를 이은 피우스 4세에게는 그런 발뺌이 통하지 않았다. 교회의 권위는 그림 수정을 결의한다. 1564년 1월 21일 트렌티노 공의회의 결정은 미켈란젤로가 여든 아홉 나이로 숨을 거두기 한 달 전에 내려졌다. 수정 작업을 그의 제자 볼테라가 맡은 건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스승의 뜻을 크게 다치지 않고 최소한의 가리개만 씌우는 정도에서 일을 마무리했다. 다만 엉덩이를 흔들어댄다고 비난을 모았던 성녀 카테리나는 본격적으로 손보았다. 성자들의 부끄러운 곳을 덮는 가리개는 회벽을 파내고 젖은 석회를 새로 바른 뒤에 물감을 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볼테라는 이후 `브라게토니'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가리개 귀신’이란 뜻이다.
그러나 최근 화학약품을 이용하여 이 벽화에 낀 그을음과 때를 씻어내는 작업이 완료되어 그 동안 가려지고 벗겨져 잘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미켈란젤로는 진정한 권력은 실력에서 나온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작가로서의 고집과 주관을 기라성 같은 후원자들 앞에서도 당당히 주장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그의 작품에 토를 달거나 그의 기분을 언짢게 한 자는 상대가 누구였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 대상 중 한명이 비아지오 체세나 라는 추기경인데,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을 그리는 작업 현장을 방문한 추기경이 벌거벗은 인물들에 대해 한마디 하자, 그를 지옥의 사신 미노스로 그려놓음으로써 영원히 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다. 또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바쁘다는 이유로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그 즉시로 “교황이 날 찾으면 내가 없다고 하라”고 전하며 로마를 떠나 피렌체로 내려왔고, 교황이 다시 그를 부르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는 일화는 권력 앞에서 당당했던 그의 용기와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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