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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니전쟁]포에니전쟁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6.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22페이지 | 가격 10,000원

소개글

제3차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있습니다.
역사학과 학사논문으로 제출한 자료이니 많은 도움이 될것이라 자부합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로마와 카르타고
1. 카르타고의 경제활동
2. 카르타고의 행정과 군사력

Ⅲ. 포에니전쟁의 경과
1. 포에니전쟁의 발단
2. 제2차 포에니전쟁
3. 제3차 포에니전쟁과 카르타고의 멸망

Ⅳ. 결론

본문내용

카르타고는 북아프리카에서 튀니스 만으로 돌출한 본 곶(Cape Bon)이라는 작은 곶에 자리잡은 도시로서, 그리스인들보다 훨씬 오래 전에 무역업자와 상인으로 유명했던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카르타고의 건국 이야기는 로마의 건국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전설로 덮여 있다. 그러나 고고학 발굴 결과들은 카르타고도 과거의 추측처럼 기원전 860~814년이 아닌 기원전 750년경 건설되었음을 보여 준다. 카르타고는 지중해가 가장 좁아지고 따라서 양쪽 대륙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잡은데 힘입어 제해권을 장악하기에 이상적인 도시였다. 시칠리아와 북아프리카 중간에 있는 몰타(멜리타) 섬을 점령한 뒤에는 상업과 식민시 개척에서 가장 힘겨운 경쟁자들인 그리스인들을 지중해 서쪽 절반에서 사실상 몰아낼 수 있었다. 카르타고는 수십 년간 타로스(두로)의 충실한 자(子) 도시로 남았지만, 기원전 7세기에 모(母) 도시가 아시리아에게 그리고 그후에는 바빌로니아와 페르시아에게 종속되었다. 티로스는 이제 서쪽에 자리잡은 페니키아의 식민시들을 통제하거나 보호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갖춘 카르타고인들은 상업적 이익을 보호하고 확대하기 위해서 지중해에서 어느 국가도 따라올 수 없는 강한 해군을 창설했고, 결국에는 과거에 페니키아 식민시들과, 동쪽에서 벵가지에서부터 서쪽에서 지브롤터와 포르투갈에 이르는 지역을 세력권으로 하는 제국을 건설했다. 카르타고의 지도자들은 로마인들이 이탈리아에서 사용했던 방식대로 다른 페니키아 정착지들과 본토 인들을 충실하고 협조적인 동맹 세력으로 만드는 대신에, 그들을 힘으로 눌러 조공을 바치는 속민(屬民)들로 만들었다. 카르타고로부터 온화한 대접을 받은 유일한 사람들은 시칠리아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카르타고인들은 그들을 자기들의 속민으로 묶어두기 위해 처음에는 시라쿠사이와 경쟁했고, 다음에는 로마와 경쟁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김민제, 〈그리스-로마사 연구와 교육에 필요한 인터넷 자료〉,《서양사론》, 1998.
도널드 케이건, 《전쟁과 인간》, 현대지성사, 2004.
빅터 데이비스 헨슨, 〈살육과 문명〉, 《서구의 세계 제패에 기여한 9개의 전투》, 푸른숲, 2002.
프리츠하이켈하임, 《로마사》, 현대지성사, 1999.
토머스 해리스, 〈한니발〉전2권, 창해,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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