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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론] 율곡이이의 사상과 나의견해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6.1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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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우선 이이의 생애에 대해 살펴보면
이이의 자는 숙헌, 호는 율곡, 석담, 시호는 문성, 본관은 덕수이며, 강릉 외가에서 태어났다. 16세때 어머니 신사임당 신씨가 세상을 떠났다. 이에 생과 사에 관한 생각에 잠겨 19세때 속세를 떠나 금강산에 들어가 신학을 공부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자경문을 짓고 하산하여 성리학에 전심하게 되었다. 특별한 선생 밑에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23세 때 이황을 방문하여 도를 물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해 별시에 저 유명한 천도책으로 장원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 뒤로 전후 아홉 차례의 과거에 잇달아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칭하였다. 29세에 호조좌랑에 처음 발령을 받은 후에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그의 학문적 성장을 도운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우계 성혼이다. 그와는 율곡이 19세때 학문적 교류를 시작하였다. 32세때에는 ‘지선여중’, ‘안자격치성정지설’을 논하였고, 율곡이 37세때부터 6년에 걸쳐 ‘사칠왕복논변’을 벌였다 현실적인 문제인 동서 당쟁의 조정에 힘쓰고, 당면한 여러 가지 병폐를 고치려고 애를 썼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율곡의 제자로는 기장생, 조헌, 정엽 등이 있었고 이들에 의해 기호학파를 형성하게 되어, 이황 계열의 영남학파와 함께 조선 성리학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다.
율곡이이의 교육사상을 살펴보면
첫번째로 인간관 및 인간 형성관을 볼수있다.
이이의 철학적 입장은 이기지묘에 있다. 그래서 그의 철학체계가 이기의 조화 또는 원융의 틀로 되어있을 뿐아니라 그의 철학적 기향점이 이기의 조화에 있다. 그에 의하면, 이 세계의 모든 것을 형이상자로서의 이와 형이상학자로서의 기가 묘합된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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