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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한국미술에서 보이는 향토적 소재주의와 귀농소설에서 보이는 향토적 소재주의 비교연구

저작시기 2005.06 |등록일 2005.06.1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9페이지 | 가격 5,000원

목차

서 론 - 1930년대 한국미술의 흐름

본 론
1. 1930년대 한국미술에 나타난 향토적 소재주의
2. 향토적 소재주의를 다룬 대표적 작가
(1) 이 인성(李仁星)
(2) 김 용조(金龍祚)
(3) 김 중현(金重鉉)
(4) 박 수근(朴壽根)
3. 1930년대 귀농소설에 나타난 향토적 소재주의
(1) 이 광수의 <흙> 줄거리
(2) <흙>에 나타난 향토적 소재주의
1) 1930年代 향토주의 소재주의를 표현한 구절
2) 1930年代 한국미술에서 나타나지 않는 당시 농촌의 실상을 표현한 구절
(3) 심 훈의 <상록수> 줄거리
(4) <상록수>에 나타난 향토적 소재주의
1) 1930년대 향토주의 소재주의를 표현한 구절
2) 1930년대 한국미술에서 나타나지 않는 당시 농촌의 실상을 표현한 구절

결 론 - 1930年代 한국미술에 나타난 향토적 소재주의에 관한 평가

참고자료

본문내용

本 論
1. 1930年代 韓國美術에 나타난 鄕土的 素材主意
향토적인 소재의 풍경화는 1920년대를 이어서 1930년대 전후로 민족미술론에 대한 개념설정과 방법론에 의해 크게 부각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향토미술은 선전심사위원의 이국취향 자극과 향토소재의 풍물묘사뿐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렇게 향토소재의 식민지 정책의 이용과 유학생들은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동양주의 정신에 깊이 영향 받게 되었는데 이것 또한 미술에 있어서 서양화의 일본화를 추구하는 것이었다.
30년대 전반기에는 풍경화가 가장 애호되던 주제였다. 자연을 그리는 것은 오래전부터의 전통이었으므로 서양에서 일본을 거쳐 파급된 풍경화를 그리는 실습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 당시의 화가들이 유럽의 인상주의적 개념을 인식 했다기 보다는 토속적 풍경화에 황색계통의 중간색이 우리민족 감각에 맞아 유행하게 된 것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의미의 인상주의적 화풍을 받아들인 화가로는 오 지호(吳之湖 1905~1982)와 이 인성(李仁星 1912~1950), 김 용조(金龍祚 1916~1944)를 꼽을 수 있다. 오 지호는 동경미술학교 출신으로 후지시마 타케지의 제자였으며 녹향회(綠鄕會)의 회원이었다. 오 지호는 인상주의나 신 인상주의적 터치를 사용하면서 주변의 경치를 그려갔다.
김 용조(金龍祚)는 처음 지방화가에게 그림을 배웠고 16세에「선전」에 입선을 할 정도로 재능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1940년 동경으로 그림을 배우러 떠나 낮에 일하고 밤에 미술공부를 하면서 무리를 하여 당시의 흔한 병사의 하나인 결핵에 걸려 세상을 떠난다. 그가 남긴 작품은 유학 가기 전의 작품으로 [낙동강] 과 [바다풍경] [독서하는 여인] 등이 있다. 작품을 보면 그의 주관주의적 색채나 자유로운 붓 터치 등은 야수주의의 영향을 받고 있음도 보인다. 그러나 직접 풍경을 보고 그렸다기 보다는 서양도판을 보고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 자료

이 광수 <흙>
심 훈 <상록수>
김 성연 <근대 한국화단의 초기 서양화 수용과정에 대한 연구>, 경희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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