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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답사 리포트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5.06.1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12페이지 | 가격 1,800원

목차

없음

본문내용

보시는 건물 정면에 지금 장락문이라고 적혀있는데요 이 건물의 이름이 연경당입니다. 총 99칸의 집이고요 99칸이 방의 개수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연경당 건물은 1828년에 만들어지게 되는데요 그 당시의 순종임금님께서 민가생활을 궁궐 안에서 몸소 체험해보시고자 궁궐 안에다가 99칸의 사대부 집을 모방해서 지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보시는 연경당 건물은 다른 건물들과는 뭔가 다릅니다. 이렇게 민가처럼 칠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단청칠은 조선시대에 궁궐과 사찰에만 할 수가 있었습니다. 연 경당을 들어서면서 바깥 행랑채가 보이고 마구간과 문지기의 방도 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 두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왼편은 여자들이 출입하였던 문입니다. 사랑채 건물 앞으로는 계단모양의 돌을 볼 수가 있었는데 하마석이라고 해서 말이나 가마 이용할 때 쉽게 내딛을 수 있도록 만든 돌입니다. 선향재 건물은 서재로 쓰였던 건물로 지붕 모양이 조금 독특한데 서쪽으로 향해 있어서 오후가 되면 굉장히 많은 햇살이 내리쬡니다. 이 지붕은 일반기와지붕 위에다가 다시 동판지붕을 덧댔고요 동판 아래 보이는 것들은 사향이라고 오늘날의 블라인드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향 안쪽으로는 도르래가 있는데요 저 도르래를 이용해서 햇살을 조절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안채 쪽으로 오셨는데 이공간은 주로 여자들이 생활하던 공간입니다. 여기에서 보시면 방금 전에 보셨던 서재 건물이 그대로 보이는데요 여러분 보시기에 사랑채와 안채가 돌담에 의해서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건물 내부는 모두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99칸이라고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99칸은 방의 개수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건물의 한 칸이라는 것은 기둥과 기둥사이의 공간입니다. 기둥과 기둥사이의 공간은 사방 6자에서 8자 정도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아무리 높은 상류층이라고 해도 이렇게 99칸 이상의 집에서는 살수가 없습니다. 이곳은 안채이기 때문에 왼쪽 편에 부엌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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