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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위대한 폭군, 진시황

저작시기 2003.09 |등록일 2005.06.11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처음으로 황제라는 칭호를 쓰다.
2) 중앙집권 제도의 확립
3) 동문(同文)--문자의 통일
4) 도량형(度量衡)의 통일
5) 동궤(同軌)-차륜(車輪) 폭의 통일
6) 치도(馳道)의 건설
7) 분서갱유(焚書坑儒)
8) 불로장생(不老長生)의 꿈
9) 아방궁(阿房宮)과 능묘의 건설
10)만리장성
11)진시황의 죽음

본문내용

ꡐ벌처럼 높은 코, 긴 눈, 새가슴, 승냥이 같은 목소리ꡑ―위(魏)나라 사람으로 진의 국위(무관의 하나)가 된 위로(慰瀘)의 진시황제에 대한 인물평이다.
중국 역사에 있어서 진시황제는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 오랜 옛날, 기원전 221년에 전 중국을 정치적으로 통일하였고, 그 이후로 중국인들은 통일된 중국을 정상으로 보고 분열된 중국을 비정상으로 보게되는 관념을 낳았다는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시황의 중국통일은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진시황은 진나라의 왕으로써 여불위(呂不韋) 여불위(呂不韋, ?~기원전235년)
원래는 상인으로 조나라에 왔다가 조나라의 인질이 되어있는 진나라의 공자(자초)를 만나, 자초가 진나라에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여불위의 몸을 모시고 있던 여성을 자초가 이어 받는다. 그러나 이 여성은 이미 여불위의 자
식을 임신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후의 시황제가 된다. 진나라에서는 왕이 죽고, 자초가 장상왕에 즉위하지만, 3년
만에 죽고 정(시황제)이 13세의 나이로 즉위한다. 아직 소년이기에 진나라의 실권은 여불위에게 넘어갔다. 후에 시
황제가 장성하고 직접 정치할 능력이 되자 여불위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에 여불위는 "주살을 당할바에야 차라
리 자살을 택하겠다."라며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
를 통해 13세에 왕위에 올라 20세에 친정을 시작하면서 전국 통일의 계획을 세우고 불과 19년 만에 그 계획을 완성한다. 진시황제는 황제가 된 후 역사에 남을 많은 일을 하였다. 군현제의 실시, 문자의 통일, 사상통일, 도량형 통일, 흉노정벌 등 그 밖의 여러 가지 업적에도 불구하고 폭군으로 비쳐진 것은 분서갱유(焚書坑儒:B.C.213) 등과 같은 희대의 사건들을 저지른 대가가 아닐까한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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