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국어국문] 북학파 후사가의 문학적 경향

저작시기 2005.05 |등록일 2005.06.05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7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북학파 후사가의 문학적 경향에 대한 레포트 입니다.
도움 많이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사가시인들의 인물탐구
3. 실학과 후사가
4. 사가의 시문관
5. 사가의 문자 인식
6. 사가시의 題材
7. 시어와 수사에 대한 관심
8. 맺는 말

본문내용

1. 들어가며

북학파 후사가는 18세기에서 19세기 전반기에 걸쳐 활동한 재능 있는 시인들인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 네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조선의 시단만이 아니라 중국의 시단에서까지 시인들 입에 회자 되었던 인물들이다. 또, 네 시인은 연암 박지원의 사랑하는 제자들이며 친근한 벗들이다. 이처럼 네 사람과 연암과의 관계는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밀접했다. 또 사가시의 고상한 사상, 예술성을 그 누구보다도 높이 평가한 것도 연암 박지원이었다. 그러나 당시 고루한 유학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다 1777년 유득공은 29세의 청년시인으로 입연 사절단 수행원 중 한 사람으로 중국을 여행할 수 있었고 그 기회에 당시 유명한 학자이며 시인이며 평론가인 우촌 이조원과 반정균을 만나게 된다. 그 때 유득공이 자기 문집 『가상루집』, 이덕무의 『청장관집』,박제가의 『명농초고』,이서구의 『강산집』에서 뽑은 종합 시 작품집을 그들 앞에 내놓았다. 이를 보고 이조원은 쇠퇴해 가는 시가 조선에서는 살고 있다고 말했으며, 반정균은 동방 군자의 나라 조선의 성명과 문물이 중국과 다름없다고 말하고 각 작가, 각 시편에 대하여 정당한 평가를 했던 것이다. 그리고 각 작가의 개성 있는 문체의 독자성을 밝혔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뛰어난 모습을 보였던 이들이 당시의 고루한 한학자들의 형식주의 ․ 모방주의에 의하여 억제 당했던 사실과 장기간에 걸친 일제의 우리나라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의 결과로 오랫동안 파묻혀 그 빛을 발휘하지 못해왔었다. 지금부터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의 문학적 경향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