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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혼상제]관혼상제

저작시기 2004.10 |등록일 2005.06.04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500원

소개글

관혼상제에 관한 일반적 내용입니다.

목차

[1] 전통 상례의 절차 및 구조
1. 주자가례의 도입과 정착
2. 상례의 절차
3. 상례의 구조

[2] 전통 상례에 나타난 영혼관 및 내세관
1. 영육 분리의 이원론
2. 이승에서 조상신으로의 승격

[3] 사회 조직 구성원리의 표현과 재생산
1. 부계 및 본종 중심의 친족조직을 형성하고 강화하는 기능
2. 지연공동체 경계의 재설정

[4] 현대의 상장례

본문내용

유교에 바탕을 둔 상장례가 본격적으로 정착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이다. 《周書》에 따르면 백제시대에도 일반적으로 유교의 상장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3년상이 행해졌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것이 정확히 유교의 영향으로 볼 수 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고려 시대에 들어오면 성종 4년(985)에 유교의 복제도인 오복제도(五服制度)를 반포하기도 하였고, 3년상의 편법인 이일역월제(以日易月制)나 삼년상의 틀에 포함되는 급가백일제(給暇百日制)가 실행되기도 하는 등, 상례에 있어 유교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일역월제와 같은 제도의 실행은 3년상의 성행에서 오는 폐단을 개선한 것으로 보이며 유교식 상장례가 고려 초기부터 존재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고려말에 들어온 주자가례의 도입과 시행은 조선초기까지는 신진사대부들이 주도하였다. 고려 말 성리학이 유입되면서 신진사대부들은 종전까지 불교식 관행과 병행하여 편법으로 운영되던 장법, 삼년상 및 탈복제 등을 원칙에 따라 시행할 것을 주장한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경국대전 등 각종 법전에 《가례》가 성문화되면서 국가의 시책으로서 널리 권장되었다. 그러나 조선초기까지도 이러한 원칙이 사대부 사회에서 관행화되지는 않았고, 조선 중기에 이르러 사족사회에서 널리 시행되면서 민간에도 점차 퍼져 갔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 초․중기에 정암 조광조의 유교식 개혁 정치가 실시됨에 따라 가례의 원칙이 강화되었고, 조선조 후기에 이르러서는 도암 이재의 《사례편람》이 출간되어 보급되는 것을 전후하여 전통상례로서의 유교식 예절이 엄격히 정착되었다고 해석되기도 한다.
조선 시대에 예법의 실천을 둘러싸서 전개되었던 해석상의 논쟁은, 해석의 근거를 중국고전에서 원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가례》나 《사례편람》의 규정이 그대로 실천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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