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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 일본의 중국침략에 관한 레포트

저작시기 2002.03 |등록일 2005.06.0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1. 일본의 중국침략

2. 항일민족통일전선

3. 서안사변

목차

1. 일본의 중국침략

2. 항일민족통일전선

3. 서안사변

본문내용

抗日(항일)하자는 국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초공장전에만 진력한 장개석은 마지막 작전을 독려키 위해 1936년 12월 12일 서안에 왔다. 이때 동북군 張學良(장학량)과 서북군 揚虎城0(양호성)이 장개석을 감금하고 남경국민정부의 개조,내전 중지,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을 요구하였는데 이를 '雙十二(쌍십이)사변'이라고 한다. 9.18 사변 때 일본에 저항하지 않는다고 비난당하고, 현재는 일본군도 아닌 중국군과의 싸움을 하면서 더구나 자신의 동북군이 나날이 손상되어가는 것을 목격한 장학량의 가슴속에는 공산당군 소탕전에 대한 의문과 대일 부저항의 오명을 씻으려는 패기 등 복잡한 심정이 오고 간 것이었다. 그러나 장학량측이 명확한 전망과 충분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동안 재야의 지식인들과 학생들은 국민정부의 초공작전에 반대하면서 내전을 중지하고 일치단결하여 抗日(항일)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특히 중공의 항일 민족통일전선 주장에 영향을 받아 내전중지 주장이 확산되고 학생들의 시위운동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장개석은 초공작전을 개속하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체포하였다. 장학량은 몇차례나 장개석에게 내전중지와 정치범 석방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또한 중공군에 포로가 되었던 동북군중에는 세뇌를 당하고 돌아와 내전중지와 항일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태가 일어났고 장학량도 중공과 접촉하면서 마음이 흔들리게 되어 마침내 서안사변을 일으키게 되었다.
개석의 부인인 송미령등이 교섭차 달려오고 감금당한 장개석은 周恩來(주은래)와 만나 정부의 개조와 정치범의 석방,초공작전 중지에 합의하여 서안사변은 평화적으로 해결되었고 장개석은 12월 25일 서안을 출발 남경으로 돌아왔다.

참고 자료

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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