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어 입력폼

[철학] 팍스브리타니카와 팍스아메리카나

저작시기 2003.05 | 등록일 2005.05.26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10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Ⅰ. 팍스 브리타니카
1. 팍스 브리타니카의 대두
2. 19세기 국제질서와 팍스브리타니카
3. 팍스 브리타니카의 쇠퇴

Ⅱ. 팍스 아메리카나
1. 팍스 아메리카나의 대두
2. 팍스 아메리카나와 전후 질서
3. 팍스 아메리카나의 약화와 국제질서의 변화
4. 역사적 비교와 현재적 함의

본문내용

Ⅰ. 팍스 브리타니카
1. 팍스 브리타니카의 대두
18세기와 19세기를 가르는 대전쟁이 끝난 뒤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떠올랐고, 영국의 군사적․경제적 우위는 19세기 후반에 이르기까지 더욱 강화되었다. 1900년 당시 영국은 역사상 유례없던 대제국을 건설하여, 5대양 6대주에 걸쳐 약 1200만 평방마일의 땅고 세계인구의 4분의 1을 지배하는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였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자 “세계의 은행” 이었고, 다른 나라들에게 발전의 방향과 모델을 제시했다. 이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19세기를 “영국의 세기” 혹은 “팍스 프리타니카(Pax Britannica)"의 시기로 간주한다.

당시 영국이 지녔던 힘의 근간으로 누구나 지목하는 것은 경제력이다. 영국의 산업화는 나폴레옹 전쟁 이전부터 시작되어 전쟁의 필요에 의해 더욱 진전되었다. 1830녀대에 이르러 영국은 “최초의 공업국”으로서 산업화 수준이나, 생산성 그리고 공산품 생산량에 있어 독보적 지위에 도달 하게 되었다. 이시기에 인구의 급팽창으로 산업화에 필요한 국내시장과 노동력이 제공되었고, 효과적인 금융제도가 산업화를 뒷받침해 주었다.

19세기 초반에 영국이 이같이 막강한 경제력에 바탕을 둔 각대구으로 부산한 것을 케네디는 극히 새로운 현상으로 간주한다. 즉 이전과 같이 산업적 팽차이나 영토적 확장에 기반을 둔 강대국이 아니라 생산과 자본을 장악한 새로운 유형의 강대국이 출현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이 경제적 강국 혹은 “무역국가(trading state)"의 성격만을 지녔던 것은 아니다. 막강한 경제력은 곧 강력한 군사력의 기반이 되었고, 강력한 군사력은 부를 유지하는 보호막이 되었다. 특히 영국의 해군력은 18세기 이래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정도여서, 19세기 후반에는 2위와 3위의 해군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한 해군을 지니고 있었고, 전세계의 전략 거점에 해군기지를 확보하고 있었다. ”일찍이 해양제국들의 역사에서 볼수 없었던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것이다. 발달된 해운업과 국부가 영국 해군력의 바탕이었음고 동시에 제해권의 장악이 곧 영국의 식민지 경영과 무역망을 보호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참고 자료

없음
다운로드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