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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 백제의 국가 형성

저작시기 2005.04 |등록일 2005.05.18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5페이지 | 가격 1,300원

소개글

백제의 국가 형성에 관한 이론을 정리해 놓은 글입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백제의 건국에 대한 논의
Ⅲ. 백제 시조 전설에 대한 문제
Ⅳ. 백제와 마한과의 관계
Ⅴ. 고고학적자료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Ⅱ.백제의 건국에 대한 논의

① 온조왕 중심설 (유이민 집단과 선주 토착 세력의 연합)
: 노중국에 의하면 온조계 집단은 卒本지역에성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위례지역에 정착한 소국이다. 더불어 미추홀에는 비류계 집단이 세운 소국이 있었다. 온조 집단이 한강유역으로 이동하여 왔을 때 이 지역에는 청도기 및 초기 철기 시대 이래로 이미 선주토착 세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온조 집단은 이러한 선주 토착 세력들과의 관계를 통해 건국을 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十臣의 존재인데 건국 설화에는 十臣이 온조와 함께 내려 온 것으로 되어 있지만 노중국은 이를 斯盧國의 六村長와 같은 존재로 파악하여 위례지역의 유력한 선주 토착 집단으로 본다. 이와 같은 논지를 통해 온조집단의 건국은 유이민 집단과 十臣으로 표현되는 선주의 10개 읍락이 중심이 된 것으로 본다. 이를 통해 十濟를 건국한다. 十濟의 의미를 통해 건국 과정에서 선주 읍락의 지배 세력들의 세력이 컸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온조집단의 한계성을 드러내준다.
다음으로 주목되는 점은 일설의 伯濟→百濟의 전환이 아닌 十濟→百濟의 단계로 파악한다는 점이다. 노중국은 이 점에 대해 伯濟는 百濟의 표기상의 차이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실제로 고대 용어 사용에 있어서 음의 동일성을 이용한 방법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더불어 十濟→百濟로의 발전은 초기 백제의 도읍지 이동문제와 결부된다. 이는 하북 위례성→하남 위례성으로 천도한 것을 뜻하는 데 이 원인으로 노중국은 온조기 13년조의 내적 문제와 말갈 및 낙랑의 침략에 대비한 외적 문제, 그리고 지리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라 주장하였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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