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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페스탈로치

저작시기 2004.12 | 등록일 2005.05.13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9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생애

2.교육사상

3.교육사적 면

4.교육원리

5.저서 및 요약

본문내용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몸이 허약하였고, 성격도 활발한 편이 되지 못하였다. 더구나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해에 외과 의사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집안이 기울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절약을 해가면서 살림을 꾸려 나갔고, 세 형제들은 무럭무럭 자라났다.
여름 방학이 되면 그는 언제나 할아버지의 집에 가곤 하였다. 목사인 할아버지는 종교를 전하러 집집을 방문하거나 들에서 밭일을 할 때에도 손자를 데리고 다녔다. 그는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거기서 많이 공부할 수 있었다. ―대자연에서 땀을 흘리며 일하는 즐거움, 아무리 일을 하여도 가난하기만 한 농민이나 가난 때문에 학교도 가지 못하는 많은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학교 공부보다도 할아버지처럼 사람들을 행복으로 이끌 목사의 일에 마음이 이끌리게 되었다. 어느 날 수업 중에 큰 지진이 일어났다. 모두가 큰 소란을 피우며 앞을 다투어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린 학생들은 놀라서 울어대거나 발버둥을 치는 것이었다. 이 때 침착하게 친구들을 격려해 주며 미처 피난하지 못한 아이들을 도와주는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은 이제까지 겁쟁이라는 놀림을 받고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던 '괴짜 하리 공(公)' 하인리히 페스탈로치였다. 페스탈로치가 태어난 스위스는 당시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강대국 사이에 끼여 정치나 경제가 불안정하였다. 애국심에 불타는 페스탈로치는 취리히 대학생이 되었을 때, ‘지금 스위스에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라는 논문을 썼다. 이 논문은 정부의 방침에 반대되는 것이어서 발표 금지가 되었고, 경찰에 여러 차례 불려가기도 하였다. 그러나 페스탈로치는 굴복하지도 않았다. 대학을 중퇴한 다음 농장에 가서 일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농업을 통하여 국가 사회에 봉사하려고 결심하였기 때문이었다.

참고 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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