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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아사히 소송

저작시기 2004.05 |등록일 2005.05.13 한글파일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아사히 소송의 발단, 경과와 판결, 사회정책적 의미에 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아사히소송의 발단
1) 원고 아사히 시게루의 개인력
2) 아사히소송의 발단
2. 아사히소송의 경과와 판결
1) 아사히소송의 쟁점
3. 아사히소송의 판결의 의미
1) 제1심판결의 의미
4. 아사히소송의 사회정책적 의미

본문내용

1. 아사히소송의 발단
1) 원고 아사히 시게루의 개인력
아사히 시게루(朝日茂)는 1913년 7월 岡山縣 津山市에서 4형제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아사히 시게루(朝日茂)는 1933년 4월 동경의 日萬倉庫주식회사에 입사하고 동시에 중앙대학교 야간부 상학과에 입학하여 1936년 졸업하였다. 1937년에 객혈이 발병하여 8년간 근무하였던 일만창고주식회사에서 퇴직하였다. 당시 실시되고 있던 건강보험의 급부는 불과 6개월이 되자 중단되었고 퇴직금도 2년이 못되 모두 사용해버리고 제생회라는 구호단체에서 입원료가 면제되는 의료권을 받아 장기간 요양생활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후 환자 자치회 활동을 의식이 단지 참고 있는 것만으로 개인 생활의 권리가 수호되지 않고, 적극적인 투쟁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1949년 「일본환자동맹」(1948년 3월 결성)의 중앙위원에 선출되었다. 그는 「결핵환자의 입퇴원기준」의 강압에 대한 투쟁이라든지, 중병자의 個人付添婦制度의 폐지에 반대투쟁을 하는 중에 1955년 큰 각혈을 하여 최중증환자가 되었다.
2) 아사히소송의 발단
당시 아사히 시게루(朝日茂)는 1924년 이래 폐결핵으로 인하여 일본의 국립 강산요양소에 입소하여 무의탁한 무수입자로서 생활보호법에 의하여 의료 및 생활부조 최고월액 600엔의 일용품비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56년 8월 이래 친형으로부터 월액 1,500엔을 생활비로 조달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진산시 사회복지사무소장은 동년 8월 1일 이후 매월 생활조달비로 받는 1,500엔 중에서 600엔을 아사히 시게루(朝日茂)가 종래 생활부조로서 지급받고 있었던 일용품비에 충당시키도록 해서 생활부조를 폐지하고, 잔액 900엔을의료비의 일부로써 아사히 시게루(朝日茂)에게 부담시킬 취지로 보호변경결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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