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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역관의 대청무역

저작시기 2005.05 | 등록일 2005.05.11 한글파일 한컴오피스 (hwp) | 6페이지 | 가격 1,400원

소개글

조선시대에서 특히 조선후기
17세기 역관 주도하의 대청무역과
대일 중개무역에 대한 발표문입니다.
각주도 많이 달았구요.
이러한 역관 무역에 관한 자료는 흔치가
않습니다. 연구된 자료도 적을뿐더러
해피캠퍼스 내에는 역관 무역에
관한 레포트는 보지 못했거든요.(논문은
봤지만요)

상당히 자료가 없는 주제인데다 디테일한
주제여서 작성하는데 힘들었던 보고서
입니다.
바로 4일전 발표한 발표문이구요.
너무 고생해서 만들었기에 가격이
조금 높은 점 이해바랍니다.
전체적으로 좋은 점수 받았구요.
같이 수업듣는 학생들에게도
좋은 평가받았습니다.

목차

1. 머리말

2. 역관제도

3. 역관의 무역특권과 중개무역
1) 무역특권
2) 중개무역

4. 맺음말

본문내용

1. 머리말

17세기 조선은 두 차례의 호란을 겪으면서 명(明)과의 조공관계를 청(淸)과의 조공체제로 전환하였다. 조공체제 하의 조청무역은 변경교역과 사행무역으로 진행되었다. 변경교역은 청나라가 만주 지방 거주민들의 생활필수품을 조달하기 위해 강제한 물물교환으로 교환 물품의 종류, 수량, 개시 일자 등이 미리 정해져 있었다. 따라서 변경무역은 무역적 성격을 띠지 못하였고 교역량이나 상품적 가치도 낮아 여기에서는 논외로 하였다.
사행무역은 ‘사행의 여정 중에 이루어지는 무역으로 공무역(公貿易) · 사무역(私貿易) · 밀무역(密貿易)이 병행되고 있었다. 조선사회가 16세기 말 17세기 전반기에 왜란과 호란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속히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대동법이 전국에 확대 실시되었고 특히 청·일간의 중개무역이 활기를 띤데 힘입고 있다. 그런데 이 중개무역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청나라에 오갔던 부연사행(赴燕使行)이며, 이를 주도한 것이 부연역관(赴燕譯官)이었다. 병자호란 이듬해인 인조15년(1637)부터 조선의 개항(1876)까지 청나라로 간 사행은 총 673회에 이르며 같은 기간 조선으로 온 청나라의 칙사가 165회였으므로 조선의 사행이 약 4배가량 많았다. 동아시아 조공체제 속에서 볼 때 당연해 보이는 두 나라의 사행빈도 격차는 그 만큼 조선에게 대청무역의 기회가 되었다.

참고 자료

유승주 ․ 이철성,『조선후기 중국과의 무역사』, 경인문화사, 2002
이철성, 『조선후기 대청무역사 연구』, 국학자료원, 2000
장존무. 김택중․안명자․박병석․손준식․김 문 옮김『근대한중무역사』,교문사 , 2000
김정미, 「조선후기 대청무역의 전개와 무역수세제의 시행」,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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